성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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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초기 문물 제도는 성종 때에 거의 완성되었으며, 백성들은 건국 이후 가장 태평성대한 세월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평성대는 성종의 치세 후기에 퇴폐 풍조를 조장하기도 했다. 또 여색을 밝혀 여러 후궁을 두었는데 후궁들 사이의 갈등과 알력을 조정하지 못하여 후일 [[연산군]]에 의한 학살 사건을 불러오는 빌미를 제공한다.
 
성종은 동물을 좋아하였는데 궁궐 후원에 사슴과 강아지, 고양이 등을 데려다가 기르기도 했다.<ref>이중 두 마리의 사슴은 연산군에 의해 사살된다.</ref> 성종은 [[1494년]] 가을부터 폐병과 기허증, 서증(暑症) (일종의 더위 먹은 병) 등으로 병석에 누웠고, [[등창]]까지 생겼다. 성종은 [[1494년]] [[음력 12월 24일]] ([[1월 20일]])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폐병, 기허증, 서증, 등창 등의 후유증으로 3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능은 선릉(宣陵)이며,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계비2계비 [[정현왕후]] 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