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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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유비가 군수물자가 풍부한 강릉을 점거하는걸 두려워해 수송부대를 후방에 배치하고 신속하게 양양을 점거했다. 조조는 [[조순 (후한)|조순]](曹純)과 함께 몸소 5천 정예기병대 호표기를 이끌고 하루 밤낮으로 유비를 추격하였고, 이들은 당양현 장판에서 유비군의 후미를 급습하게 된다.
 
유비가 이끌던 피난민 무리는 급습에 붕괴되어 흩어져 곧 조조군에게 사로잡혔다. 조조가 이렇게까지 서둘러 급습할 거라 생각을 못한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과 함께 수십기의 병력만을 데리고 도주했으며 피난민 무리는 급습에 흩어져 곧 조조군에게 사로잡혔다. 이때 피난민 사이에 있던 유비 가신들의 친족들과 유비 자신의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하였다. 유비의 가신 [[서서]](徐庶)의 모친이 사로잡혀 그가 유비에게 이별을 고하고 조조 진형으로 투항했으며 조순은 유비의 두 딸을 노획하였다. 이런 혼란속에서 [[조운 (촉한)|조운]](趙雲)은 호표기 사이로 들어가 아두(阿斗;후에 [[유선 (공사)|유선]](劉禅))와 감부인을 구해내어 지키면서 그들의 추격을 뿌리쳐 무사히 합류하였다.
 
한편 [[장비]](張飛)는 후군을 맡아 조조군의 추격을 막기위해 20여기를 이끌고 강을 방패삼아 다리를 끊어버린 후 '''"나는 장익덕이다. 누가 나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는가!'''"라고 외쳐 조조군은 겁을 먹어 누구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고, 유비는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