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홍"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97 바이트 추가됨 ,  5년 전
태그: 모바일 앱
학행으로 이름을 날려, 소년시절 함께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한 [[김우옹]]의 천거로 [[조선 선조|선조]] 초 관직에 나갔다. [[1572년]](선조 5년) 스승 [[조식]]은 임종에 이르러 그에게 자신의 칼을 물려주었다. 조식은 죽기 전 그에게 학자로서의 의리와 결단의 징표로 칼을 수여한 것이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올랐고, 1575년 황간현감에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이듬해 중앙으로 복귀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가 [[영천]]군수로 나갔다. 그 뒤 당파가 동서로 양분되자 다른 남명학파와 함께 [[동인]]에 가담, [[서인]] [[정철]](鄭澈)·[[윤두수]](尹斗壽) 등을 탄핵하려다가 도리어 해직당하고 낙향하였다. 또한 정인홍은 세조부터 명종 시기까지 권력을 장악해 온 [[훈구파]]와 척신정치와 훈구파 잔존세력 청산에 소극적인 [[서인]]을 여러차례 탄핵했다.
 
[[1580년]] [[12월]] 정4품 [[사헌부]] [[장령]]에 임명되었다.<ref name="nodae207">노대환, 《조선의 아웃사이더》 (도서출판 역사의 아침, 2007) 207페이지</ref> 정인홍은 법령을 지키고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이서들의 부정과 수령들의 비리를 적발하는 등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탄핵을 가했다. 그로 인해 백관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정신을 차렸으며, 시장의 장사치들이 감히 금하는 물건을 밖에서 내놓지 못했다.<ref name="nodae207"/>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