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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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동대문운동장 터의 일부는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도감]]이 있던 곳이다. 또 일부는 서울성곽이 있던 곳으로 성곽을 통과하는 수문이던 [[이간수문]]도 있었는데, 2008년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경성운동장(京城運動場)은 훈련원 동쪽 광희문과 동대문 사이의 공원지에 해당하는 대지 22,700평에 총공사비 155,000원을 들여서 만든 동양 제일의 경기장이었다.”, “경성운동장은경성운동장은 경성부 토목과장인 이와시로(岩城)의 공사 지휘로 1925년 5월 24일 기공해서 동년 10월 15일에 개장식을 거행하였으며 총면적 22,700평, 총 공사비 155,000원, 총 수용인원 25,800명이었다.”<ref>동대문역사문화공원부지 발굴조사 동대문운동장 유적1』(서울특별시·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소, 2011) 55-56쪽</ref>
 
해방 후 이름이 서울운동장으로 바뀌었고, 1959년에는 야구장이 재개장하였다. 동대문운동장은 운동경기와 함께 대규모 집회 등 현대사에 큰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1984년 [[서울종합운동장]] (현 [[잠실종합운동장]])이 개장되어 1985년 1월부터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11700329208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1-17&officeId=00032&pageNo=8&printNo=12094&publishType=0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