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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ogol3.jpg|thumb|니콜라이 고골]]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llang|ru|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llang|uk|Мико́ла Васи́льович Го́голь|미콜라 바실리오비치 호홀}}, [[1809년]] [[3월 20일]] ~ [[1852년]] [[2월 21일]])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의 작가이며 극작가이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시조이다.
 
1809년 [[우크라이나]]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818년]] 풀타바 군립 학교를 거쳐 [[1829년]] 네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젊었을 때 배우를 지망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문학으로 전환한 고골은 철학, 문학, 역사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1827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의 생활을 취재한 소설 《디카니카 근교 농촌 야화》를 출판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푸시킨]]을 사귀고 이후 그가 남긴 대작의 소재는 대부분 푸시킨으로부터 암시를 받았다. [[183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페테르스부르크 대학]]의 조교로서 세계사를 강의했으나 실패하여 곧 퇴직하였다. [[1836년]] 희극 《[[감찰관 (희곡)|감찰관]]》을 [[알렉산더 극장]]과 [[모스크바]]에서 상연하였다. 이것은 진보 세력의 절찬을 받았으나, 지배 세력으로부터는 공격을 받게 되어 그는 [[로마]]로 갔다. 그 후 계속하여 [[스위스]]·[[파리 (도시)|파리]]·로마 등지에 거주하였다. [[1847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 《결혼》을 쓰고,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명작 《죽은 혼》의 제1부를 완성했고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하며 [[1848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해친 뒤였다. 결국 《죽은 혼》을 모스크바에서 완성했으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