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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렬'''(尹雄烈, [[1840년]] [[5월 18일]]([[음력 4월 17일]]) ~ [[1911년]] 양력 [[9월 22일]])은 [[조선]] 말기의 무신, 군인이며 개화파 정치인, [[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제2차 수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882년]]부터 교련병대 창군을 지도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으나 정변 세력 인원이 너무 적어졌다고극소수로 불과되어졌다고 정변 주요 관직을 미리 사임하며 정변의 실패를 예상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형조]][[판서]] 등을 지냈으나 실패하였고, 갑오개혁으로 경무사와 [[국방부|군부대신]] 등을 지냈다.
 
[[1895년]] [[11월]]에는 [[춘생문 사건]]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한때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한제국]] 수립 후 [[법부]][[대신 (조선 말기)|대신]], 고등재판소 판사 군부대신 등을 거쳐 [[을사 보호 조약]]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계몽, 사회 운동에 전념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다. [[전라도]]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도되자 초대 [[전라남도 관찰사]]가 되으며, 초대, 4대 [[전라남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