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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개화파'''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1874년]] 경 형성된 [[개화당]](開化黨)에서 비롯된다. [[1882년]] [[임오군란]] 전후하여 개화당 및 개화파가 청의 대한 입장 차이 및 개화정책 방안을 둘러싸고 갈등하여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분화되었다. [[개화당]]의 출발은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의 인물을 아우르지만, 분화된 이후에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만을 ‘개화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급진개화파는 청국의 속방화정책에 대항하여 ‘독립’을 매우 강조하였기 때문에 ‘개화당’을 당시에 ‘개화독립당’이라 불렸으며, 이에 반하여 청국에 의존하여 집권한 민비수구파를 ‘사대수구당’이라고 불렀다. 중심인물은 [[김옥균]]·[[홍영식]]·[[서재필]]·[[서광범]]·[[박영효]]·[[박영교]]·[[서재창]]·[[변수 (1861년)|변수]]·[[신응희]]·[[유혁로]]·[[정난교]]·[[이규완]] 등이었다. 급진개화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위안스카이]]의 청군의 개입으로개입에 밀리며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김옥균]],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등 주요 인사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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