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다다히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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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다다히로'''({{llang|ja|加藤忠広}}, [[1601년]] ~ [[1653년]] [[8월 1일]])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구마모토 번]]의 2대 번주이자, [[데와 마루오카 번]]주이다. [[가토 기요마사]]의 두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 이름은 도라노스케({{langllang|ja|虎之助}}), 도라카쓰({{langllang|ja|虎勝}})이며, 관위는 종4위하, 시종이다.
 
형 [[가토 다다마사]]가 일찍 사망하면서 다다히로가 세자가 되었고, [[게이초]] 16년([[1611년]])에 기요마사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번주가 되었다.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도도 다카토라]]가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다히로는 아버지와 달리 통솔력이 결여되어 가신단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였고, [[우시카타 우마카타 소동]] 등 중신들의 대립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여, 번의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간에이]] 9년([[1632년]]) 5월 22일, [[에도]]로 상경하던 도중 시나가와에서 입성을 제지당하고, [[이나바 마사카쓰]](稲葉正勝)에 의해 영지 몰수의 처분을 명받았으며, [[데와 국|데와]] [[쇼나이 번]]주 [[사카이 다다카쓰 (1594년)|사카이 다다카쓰]]의 감시를 받는 몸이 되었다. 그 후 데와 마루오카 번 1만 석 영지를 받아, 1년 후 마루오카로 찾아온 어머니 세이오인({{langllang|ja|正応院}})을 모시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다다히로는 울분을 떨치려는 듯 글씨를 쓰고 시가를 읊으며 지냈고, 사카이 다다카쓰가 있는 곳으로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조오 (1652년)|조오]] 2년(1653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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