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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방면군 작전참모를 거쳐 45년 다시 대본영육군부 영미반 참모를 거친 후 종전을 맞았다.
 
== 전쟁 후 ===
이후 육군성군무국에서 일하다가 육군중좌로 예편했다. 고향인 나라의 니시요시노무라(西吉野村)로 돌아와 여전히 건강하던 아버지와 함께 농업에 종사했다.
 
1954년 육상 자위대에 입대. [[요시다 시게루]] 수상의 군사 브레인으로 자위대 창설의 주역이던 타츠미 에이이치(辰巳栄一)가 불러서 돌아온 것이다. 서독대사관 방위주재관과 통합막료회의 제2실실장을 맡은 후 67년 육장보로 퇴임한다.
 
74년 [[오사카 가쿠인 대학]] 독일어 강사를 하다가 고향에서 촌장일을 하면서 지역 특산물인 요시노 감을 보급하는데 힘썼다. 촌장 2기생활 중 95년 암으로 사망했다. 82세.
 
== 에피소드 ==
60년 겨울 서독의 칼스루에의 전차공장을 주재무관단의 일원으로 시찰했다. 그래서 일본내 전차제작 기술자들이 호리를 방문해 "일본 방위청에서는 독일 전차를 참고해 일본의 신전차를 만들고 싶지만 정작 독일 전차를 볼 기회가 없습니다. 독일 전차의 특정 부분 치수를 정확히 재어 주면 나머지는 대략 알 수 있으니 좀 부탁합니다."라고 부탁했다. 호리는 자신의 손가락과 소지가 허락된 지우개달린 연필을 이용해 견학하면서 부탁받은 부분의 치수를 정확히 쟀다. 대사관에서 기다리던 그 기사들은 호리의 정보를 받고 매우 고마워했다.
 
74년 [[오사카 가쿠인 대학]] 독일어 강사를 하다가 고향에서 촌장일을 하면서 지역 특산물인 요시노 감을 보급하는데 힘썼다. 촌장 2기생활 중 95년 암으로 사망했다. 82세.
 
호리는 전후 전쟁중의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86년 어느 잡지의 좌담회에서 대만해협의 전과 과장에 대한 호리의 전보 얘기가 나오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84년부터 전사연구가인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가 호리를 취재중이기도 했다. 결국 89년 호리의 회상록인 『 대본영 참모의 정보 전기 』가 출간된다. 사실 호사카의 취재요청을 호리는 계속 거절하다가 호사카의 지속적인 방문 이후 신뢰가 쌓여 점차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촌장 2기생활 중 95년 암으로 사망했다. 82세.
 
나라현 니시요시노무라에 있는 호리의 집은 마츠모토 세이초(松本清張)와 히구치 키요유키(樋口清行)가 쓴 『 나라의 여행 』이라는 책에 아시카가시대(足利時代)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존하는 집으로 소개되어 있다. 79년 이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