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적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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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에서는 혼인적령을 [[세는나이]]로 남자 15살 이상, 여자 14살 이상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혼인은 당사자의 아버지 등 혼주(婚主)들의 일방적 합의로 이루어진 11살~13살 사이의 조혼(早婚)이 적지 않았다. 조혼은 혼인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한 강제혼(制婚)이었기 때문에 [[가정폭력]],<ref>[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10815032212870 '15살 아내가 11살 남편을 교살했다'는 내용의 1925년 1월 23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2011.8.15.</ref> 재가금지에 따른 [[과부#청상과부|청상과부]] 문제와 과부보쌈, 남성의 축[[첩]](蓄妾)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음력 [[6월 28일]] [[군국기무처]]의 의안으로 "남녀간의 조혼을 엄금하며, 남자는 20살, 여자는 16살 이상이어야 혼인을 허(許)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다음 달인 음력 [[7월 30일]] 공포되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1907년]] [[8월 17일]]에는 일본 민법([[1898년]]부터 시행)을 본떠 "남자 만 17세 이상, 여자 만 15세 이상이 되어야 혼인할 수 있다."는 칙령이 공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