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도 (중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Qkqhrhkdtn (토론 | 기여) |
Qkqhrhkdtn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
||
2번째 줄:
== 생애 ==
장안 사람으로 아버지 설운을 따라 성도(成都)에 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음률에 밝아 나이 8세에 시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4세에 아버지가 죽고 가세가 기울어 16세에 기녀가 되었다.
기녀로써 설도는 당시
그러나 나중에 위고의 조카 위정관이 과거에 급제해 관리가 되었을 때 설도가 그에게 보낸 구애의 시가 위고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위고는 설도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를 송주로 보내버렸다. 송주에서 설도는
이후 성도에
만년에는 여도사의 옷을 입고 벽계방에 살면서 음시루를 세웠다(현존하는 것은 청대에 다른 곳에 세워진 것으로 이름만 따온 것일 뿐이다). 설도의 무덤은
== 설도의 시 ==
설도의 시는 청아하고 안목의 폭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집으로 《금강집》(锦江集) 5권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전당시》(全唐诗)에 그녀의 시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 설도전 ==
설도가 송주에서 돌아와 완화계에서 살았는데, 지역 주민들이 종이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워 목부용 껍질로 붉은 색 종이를 만들어 그 종이에 시를 썼다. 훗날 사람들은 이 종이를 설도전(薛濤箋)이라 불렀다고 한다. 색이 예쁘고 크기도 아담해 이 종이에 연애의 시를 써서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