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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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스 1세'''([[그리스어]]: Κωνσταντῖνος Αʹ, Βασιλεὺς τῶν Ἑλλήνων, [[1868년]] [[8월 2일]] ~ [[1923년]] [[1월 11일]])는 [[그리스 왕국]]의 [[그리스 왕국의 군주|국왕]]으로 1913년 ~ 1917년, 1920년 ~ 1922년에 재위하였다. [[그리스-터키 전쟁 (1897년)|그리스-터키 전쟁]] 당시 그는 [[그리스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1912년]]과 [[1913년]]의 [[발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테살로니아]] 일대의 영토를 회복하여 [[그리스]]의 인구를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세계 참전대전]] 참전 여부를 놓고 그리스에서 국론 분열이 일어나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등과 갈등하던 도중에 [[1917년]]에 폐위되어 망명하였으며,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감염증으로 죽자 1920년 국민투표 후 논란 끝에 왕위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1919년]]부터 벌어진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하여 다시 폐위당하고 [[시칠리아 섬]]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4개월만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사망하였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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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황실 근위대 장교로 근무 중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3세|프리드리히 3세]]의 딸 [[프로이센의 소피아|소피아]] 공주와 결혼이 결정돼, [[1889년]] [[10월 26일]] 아테네에서 소피아와 결혼했다. [[프로이센의 소피아|소피아]] 공주와의 사이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귀국 후 [[1890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고, [[아테네]] 시에 있는 그리스군 제3사령부 사령관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그리스-터키 전쟁 (1897년)]] 당시 [[그리스 군대]]의 총사령관이었으나 [[1897년]] [[그리스-터키 전쟁 (1897년)]]에서 참패하였고 그 여파로 국왕의 인기가 하락하고, 왕정 반대파의 목소리가 강해지게 됐다. 또한 의회에서는 군사 개혁과 동시에 왕실 왕자들의 해고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한편 [[발칸 전쟁]](1912년 ~ 1913년) 당시 그리스 군대를 이끌어 이 전쟁에서 [[그리스]]는 [[테살로니키]]를 점령하고 국토와 인구를 갑절로 늘렸다. 그는 부왕이 살해당한 뒤 1913년 3월 18일에 왕위를 승계하였다. 즉위 직후 그는 [[발칸전쟁발칸 전쟁]]에서 승리하여 테살로니키를 최종 평정하였다.
 
=== 치세 기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