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칙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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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3월 10일, 임칙서는 두 달의 여정을 거쳐 광저우에 도착했다. 주 강의 양쪽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흠차대신을 맞이했다. 광저우 전역이 흠차 대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임칙서는 이튿날 두 장의 공고문을 써 붙였다. 한 장은 자신이 흠차대신의 신분으로 광저우에 온 목적은 항구를 불태운 사건을 조사한다는 내용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아편 단속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는 흠차대신인 임칙서가 광저우의 관리와 백성, 그리고 외국인에게 최초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복잡한 국면을 잘 처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ref>왕페이펑 저, 차혜정 역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영웅편)》 273p 시그마북스(2010)</ref> 광저우로 가는 도중에 임칙서는 광범위하게 조사를 했으며, 광저우에 도착해서도 6~7일의 현장 조사를 진행한 다음 3월 18일에 13행(行)의 행수를 소환해 심문을 했다. 13행이란 청 정부가 대외 무역을 특별히 허가한 13개의 상점으로, 차와 비단 무역 등을 독점했다. 이들은 대외 무역의 특권을 누리는 관료 상인으로, 흡화행의 오소영, 광주행의 노계광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3행은 외국 상인과 결탁해 아편 밀매를 돕는 외국 상인의 대리점이었다. <ref>왕페이펑 저, 차혜정 역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영웅편)》 273~274p 시그마북스(2010)</ref>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차와 교환한 아편을아편에 석회를 묻혀 바다로 폐기해 버렸는데(아편은 석회와 소금을 만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못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에 분노한 영국 상인들은 임칙서에게 항의하였고, 결국 [[아편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현지의 영국 상인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된 영국의 동양함대는 [[광둥]]이 아니라 [[베이징]]에서 가까운 [[톈진]]에 출몰하였다. 바로 코 앞에 닥친 함대를 맞이한 청의 지도부는 당황하며 임칙서를 해임하였고, 영국에 저자세로 대처하였다. 임칙서의 후임 기선(琦善)은 오로지 영국에 저자세로 일관하였고, 그 결과 청나라가 대폭 양보한 [[난징 조약]]을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