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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남
 
남기남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내 딸아 울지 마라>(1972)로 데뷔했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찍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였다. 그런 만큼 특별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은 없다. 그러나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전국에서 1백80만 관객을 모은 <영구와 땡칠이>(1989) 같은 히트작도 있다.그의 작품은 100여편에 이르고 있으며 연도별 작품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미스터 O>(1977) <불타는 정무문>(1977) <신정무문>(1978) <뒤돌아 보지 마라>(1979) <평양맨발>(1980) <사형삼걸>(1981) <평양 박치기>(1982) <0시의 호텔>(1983) <야망과 도전>(1984) 등이 있고 90년대 작품으로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서울로 보낸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딸이 벌이는 해프닝을 주로 그린 <소녀 십팔세> (1993) 등이 있다.
 
남기남은 90년대 말까지도 <천년환생> (1997)을 내놓는 열의를 보였다. 일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는 주목이 대상이 된 적이 없지만 그의 영화가 가진 극단적인 엉성함 때문에 오히려 극소수의 지지자들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그를 ‘한국의 에드 우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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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치를 든 짱구와 땡칠이 (1998) -
*2. 씨내리 (1992) -
 
 
남기남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내 딸아 울지 마라>(1972)로 데뷔했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빠른 시간 안에 찍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였다. 그런 만큼 특별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은 없다. 그러나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전국에서 1백80만 관객을 모은 <영구와 땡칠이>(1989) 같은 히트작도 있다.그의 작품은 100여편에 이르고 있으며 연도별 작품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미스터 O>(1977) <불타는 정무문>(1977) <신정무문>(1978) <뒤돌아 보지 마라>(1979) <평양맨발>(1980) <사형삼걸>(1981) <평양 박치기>(1982) <0시의 호텔>(1983) <야망과 도전>(1984) 등이 있고 90년대 작품으로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서울로 보낸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딸이 벌이는 해프닝을 주로 그린 <소녀 십팔세> (1993) 등이 있다.
 
남기남은 90년대 말까지도 <천년환생> (1997)을 내놓는 열의를 보였다. 일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는 주목이 대상이 된 적이 없지만 그의 영화가 가진 극단적인 엉성함 때문에 오히려 극소수의 지지자들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그를 ‘한국의 에드 우드’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