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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경상북도]] [[의성시|의성안동]] 태생으로, 한학을 공부하다가 근대 교육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뜻을 돌려 [[1907년]] [[유인식]], [[김후병]] 등과 함께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계몽 운동을 벌였다. 협동학교는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안동 지역에서 개혁 유림 세력이 힘을 합쳐 세운 3년제 중등학교였다. 이 무렵 계몽 운동에 뛰어든 인사들 중 [[신민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내다보고 해외 독립 운동 기지 설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도 [[양기탁]] 등과 함께 해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1910년]] 마침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이 계획을 구체화하여 [[1911년]] [[간도|서간도]]로 망명했다. [[이시영 (1868년)|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1858년)|이상룡]], [[윤기섭]] 등과 함께 간도 지방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데 참가했다. 경학사는 자치 조직, 신흥강습소는 훗날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김동삼은 유교적 학식과 함께 '만주의 호랑이', '남만의 맹호’로 불릴 정도로 용맹한 기질을 겸비하여 [[김좌진]], [[오동진 (1889년)|오동진]] 등과 [[맹장|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했다.<ref>하민지 인턴기자 [http://www.newsmission.com/news/2008/02/01/1512.21991.html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뉴스미션 2008년 2월 1일 작성</ref>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독립기념관]]에 옥중 유언인 다음 문구를 적은 어록비가 세워져 있고, 고향인고향 안동에는안동시 생가도임하면 복원되어천전리 278번지 생가 자리에는 그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인용문|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던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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