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헨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파일:Matthew Henson 1910.jpg|thumb|매슈 헨슨]]
'''매슈 알렉산더 헨슨'''({{llang|en|Matthew Alexander Henson}}, [[1866년]] [[8월 8일]] ~ [[1955년]] [[3월 9일]])은 [[미국]]의 탐험가로, [[1909년]]에 [[로알 아문센]]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북극|북극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북극점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사람이었다.
 
== 생애 ==
[[메릴랜드 주]] 찰스 카운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13세 때에 상선의 캐빈 보이가 되었다. 18세 때에 [[미국]]의 동부 해안 지역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지냈다. [[1887년]]에 [[미국]]의 군인이자 탐험가인 [[로버트 피어리]]가 [[니카라과]]의 [[운하]] 길을 가로지르는 조사의 도움이 되는 데 헨슨을 기용하였다. [[1891년]]부터 [[1906년]]까지 피어리와 헨슨은 몇몇의 [[북극]] 지방 원정에 파트너로 활약하였으나 북극점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1908년]]에 몇몇의 후원단들과 함께 원정길을 세웠다. 그들이 북극 거의 가까이 도달할 무렵에 피어리는[[로버트 피어리]]는 마지막 돌진을 위해 경험을 가진 헨슨과 4명의 [[이뉴잇이누이트]]들을 선택하였다앞세웠고, 그 결과 북극점 정복은 실패했지만, 북극점에서 40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피어리는 자신이 최초로 북극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하여 역시 북극점 정복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던 [[노르웨이]]의 탐험가인 [[로알 아문센]]과 논쟁을 일으켰고, 헨슨의 공적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일생 동안에 헨슨은 그의 성과에 대하여 이렇다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헨슨은 [[1955년]] [[3월 9일]]에 [[뉴욕 시|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자택에서 지병인 암으로 사망하였다.
 
[[1988년]]에 그의 유해는 [[알링턴 (버지니아 주)|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져, 완전한 군사적 명예와 함께 재안장되었다. 현재 그는 [[로버트 피어리]]의 옆에 안장되어있다.
그러나 피어리는 헨슨이 극지의 위치에 예상 착오를 하였고 피어리 자신이 최초로 북극에 도달한 것으로 말하였다. 일생 동안에 헨슨은 그의 성과에 작은 인정을 받았다. [[1955년]] [[3월 9일]] [[뉴욕 시|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자택에서 암으로 사망하였다.
 
[[1988년]]에 그의 유해는 [[알링턴 (버지니아 주)|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져, 완전한 군사적 명예와 함께 재안장되었다. 현재 그는 피어리 옆에 안장되어있다.
 
{{Authority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