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소비에트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태그: m 모바일 웹
52번째 줄:
소련 이외의 세계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던 이 소비에트정부가 세력을 넓혀가자 국민당의 장제스는 [[1930년]]부터 [[1933년]]에 이르기까지 4차에 걸쳐 대규모 포위 섬멸전, 즉 이른바 "토공전"을 폈으나, [[주더]] 등이 이끄는 [[홍군]]의 게릴라 전술에는 쉽게 수를 쓰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군 군사고문단의 조언으로 [[국민혁명군]]은 수많은 토치카와 진지를 짓고 더 많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지구전 전술로 토벌 작전을 펴서 홍군을 압박했다.
 
당시 중화소비에트 내부에는 권력투쟁이 일어나 마오쩌둥이 실각하고 새로운 지도부가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장악했다. 이 새로운 지도부는 마오쩌둥이 주장해온 [[게릴라 전술]]을 버리고 장제스의 정예군에 맞서는 전면적인 진지전으로 이에 대항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전략적 실패로 소비에트공화국은 완전 무력화되기 직전이었다. [[1934년]] 10월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소비에트 정부는 장시의 근거지를 버리고 중국 서북부의 새로운 근거지로 퇴각을 결정하고 이것이 바로 유명한 [[장정]]이 된다. 이후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수도를 [[옌안]]으로 옮기고 [[1949년]] 까지 유지 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 대장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