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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과 시호 ==
 
[[1495년]], [[조선 연산군|연산군]]이 즉위하자 명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왕을 책봉하였다. 이에 연산군은 정괄을 특별히 불러 [[우의정]]에 임명하고 곧 [[좌의정]]으로 올리며 왕 책봉에 대한 사은사로 명나라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정괄은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칠가령(七家嶺)이라는 곳에서 사망하였다. 정괄은 죽기 전에 아들 [[정종보]]에게 "평생에 적을 만한 공적이 없으니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사후 공숙(恭肅)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는데, 일을 함에 있어서 견고한 것을 '공(恭)', 마음가짐에 결단이 있는 것을 '숙(肅)'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