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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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6년]] 천계 6년 1월, [[누르하치]]의 후금군이 쳐들어왔지만, 이들을 격퇴([[영원성 전투]])했고 공적으로 병부시랑 요동순무 주지관외 군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1627년]] 영원성과 금주성에서 [[홍타이지]]를 격퇴하였다.
 
[[숭정 (연호)|숭정]] 원년 ([[1628년]])에는 병부상서 우부도어사(右副都御史)가 되었다. 동시에 [[가도 (철산군)|가도]](皮島)를 거점으로 '장난질'을부정부패를 하고자행하고 있던 명나라 수군 좌도독인 [[모문룡]]을 해적질과 조선 땅 가도에서의 행패및양민 학살, 행패 및 명군 농락의 이유로 주살했다.
 
그러나 모문룡의 부하들이 청나라에 투항했고, 홍타이지는 장성을 우회하여 북경을 공격하기로 방침을 바꾸고 명나라에 간자를 보내 내시를 매수하여 원숭환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을 흘렸다. 그러자 시기심이 강한 [[숭정제]]도 쉽게 그 소문을 믿었고, 당시 [[엄당]]의 잔당의 부활을 노리고 [[동림당]] 계열을 제거할 음모를 주도한 온체인과 왕영광(王永光)의 이익과 잘 맞아 떨어졌다. 온체인은 [[모문룡]]과 같은 고향인 [[저장 성|절강]] 출신이었다. [[위충현]]을 찬양하는 송가를 지을 만큼 엄당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온체인은, [[모문룡]]을 살해한 원숭환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었다. 이부상서 왕영광 또한 [[위충현]]의 잔당으로서 동림당에 대한 보복을 늘 꾀하고 있던 자였다.<ref>{{웹 인용|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226026001&spag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