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갑기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097 바이트 추가됨 ,  13년 전
편집 요약 없음
[[그림:GericaultWoundedCavalry.jpg|thumb|흉갑기병]]
경기병의 일종으로
'''흉갑기병'''(胸甲騎兵)은 [[근대]] [[유럽]]에 있던 [[기병]]의 일종이다. 한 장의 판금으로 제작된 [[흉갑]]을 착용하고 [[총]]과 [[검]]으로 무장했다. 유럽의 흉갑기병은 [[중세]] 유럽의 [[기사]]를 계승한 것이다.
갑주를 가슴에만 착용하고 돌격하는 기병
 
최초의 흉갑기병은 중세의 기사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초기 흉갑기병은 손과 발에 가죽장갑과 부츠를 착용했을 뿐 여전히 몸 전체를 가리는 [[갑옷]]을 입었고 [[렌스]], [[검]]에 더해 [[바퀴식 방아쇠 화승총]]으로 무장했다. 총기의 화력이 점차 강해지자 무거운 갑옷은 기동성에 방해가 되었다. 18세기 무렵이 되어 흉갑기병은 [[흉갑]]과 [[투구]]만을 착용하게 되었다.
{{토막글}}
 
흉갑기병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84년]] [[신성 로마 제국]]의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막시밀리안 1세]]가 [[크로아티아]]에서 모집한 오스트리아 연대의 흉갑기병 1백명이었다. 이 부대는 후일 [[1632년]] [[뤼첸 전투]]에서 [[스웨덴]]의 왕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구스타프 아돌프]]를 죽인다. [[1705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20여 개의 흉갑기병 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1666년]] 흉갑기병을 도입하였고, [[러시아]]에서는 [[1732년]]에 [[러시아 황제 친위대]]와 같은 흉갑기병 부대가 생겼다. 러시아의 흉갑기병은 [[1735년]]에서 [[1739년]]에 있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는 [[바그람 전투]] 이후 흉갑기병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흉갑기병 연대 1개가 두 연대의 일반 [[기병]]과 동등한 전력이라고 생각하였다. 흉갑을 갖춘 기병대의 돌격은 교전 상대에게 큰 심리적 타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의 제위 기간중 14개의 흉갑기병 연대를 보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실제 효용성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나폴레옹 전쟁]] 중 영국과 교전중이던 나폴레옹의 흉갑기병은 흉갑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어찌되었든, 19세기 까지도 흉갑기병은 주요한 군사력으로 취급되었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흉갑기병 연대를 운용하였다. [[1914년]]까지도 [[독일]], [[프랑스]], [[러시아]]에는 흉갑기병 연대가 존재하였다.
 
[[그림:Ceremony.lifeguard.london.arp.jpg|thumb|영국 근위 기병]]
한편 [[영국]]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후 3개의 [[근위 기병연대]]가 흉갑기병 연대로 창설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이 실전에 투입된 적은 없다.
 
[[분류:기병]]
 
[[de:Kürassiere]]
[[en:Cuirassier]]
[[es:Cuirassier]]
[[fr:Cuirassier]]
[[it:Corazzieri]]
[[he:קירסיר]]
[[nl:Kurassier]]
[[ja:胸甲騎兵]]
[[no:Kyrassér]]
[[pl:Kirasjerzy]]
[[pt:Couraceiro]]
[[ro:Cuirasier]]
[[ru:Кирасир]]
[[sl:Kirasirji]]
[[fi:Kyrassieerit]]
[[sv:Kyrassiär]]
[[uk:Кірасир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