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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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과 최후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3-10-26}}
김홍집 내각에서는 일본의 압력 외에도 [[단발령]](斷髮令)의 강행 등 급격한 개혁을 실시하다가 [[성리학]]자들의 반발로 전국적인 의병 봉기와 집회를 야기하였고, [[1896년]](건양 1년) 러시아의 세력이 증대하여 드디어 [[아관파천]]이 일어나 김홍집 내각이 붕괴되고 친러파 내각이 조직되었다. 그와 동시에 김홍집은 많은 대신이 피살될 때 매국 친일당의 두목으로 몰려 광화문에서 군중에게친러파 군인들과 군중들에게 살해되었다. 저서로는 '이정학재일록 (以政學齋日錄)'이 있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54세였다.
 
살해된 시신은 [[광화문]] 밖에 효수되었고, 시신은 도륙되어 각도로 보내졌으며, 백성들은 수급에 돌을 던졌다 한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그의 시신을 씹는 자까지 있었다고 전한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연좌제]]가 적용되었는데, [[이시영]]에게 시집간 딸 등 이미 출가한 딸들만이 [[연좌제]]를 피하였다. [[한성부]] 사저에 있던 부인은 연좌되어 관비로 끌려갈 것을 예상하고 아들을 죽이고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