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 (161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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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1614년]] ~ [[1687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남인의 거두이며 그 중 탁남의 핵심으로 [[허적]], [[권대운]], [[오시수]], [[목내선]], [[김덕원]], [[허목]] 등과 남인의 핵심 인물이었다.
 
== 생애 ==
효종 때인 165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이 되고 정언, 필선, 보덕, 집의, 사간을 거쳐 현종 때 [[승지]]가 되고 경상도관찰사로 승진해서 다시 양주목사를 거쳐 바로 [[좌부승지]]가 되고 [[우승지]]로 승진했다. 이후 황해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이후 남인의 핵심인물이 되고 [[형조참판]]으로 승진하며 현종의 신임을 받아 남인의 거두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전라도관찰사로 있다가 연이어 [[호조참판]]이 되고 1669년 즈음에 [[한성부판윤]]으로 정경의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관상감제조를 겸하다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거쳐 강화유수로 다시 외직에 나갔다가 [[한성부판윤]]이 되고 산릉도감제조를 겸한 뒤 숙종 초반기 남인이 집권하자 남인의 핵심인물로 성장, [[허목]], [[허적]], [[윤휴]], [[권대운]], [[오시수]], [[김덕원]], [[목내선]] 등과 함께 [[송시열]], [[김수항]] 등을 밀어내고 바로 [[우참찬]]으로 승진, [[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가 되고 [[판의금부사]]를 하다 바로 [[이조판서]]가 된다. 이후 [[우찬성]]으로 승진해 지경연사를 겸하다 다시 [[판의금부사]]를 거쳐 [[예조판서]]가 되고 [[수어사]]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곧 [[좌의정]]이 되었다. 경신환국 이후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나 이후 귀양을 갔다. 이후 위리안치되었다가 풀려나서 전리로 돌아갔다. 기사환국 후 신원되었다가 갑술환국 이후 삭탈되었으나 이후 최종적으로 순종 때 신원되었다.
 
[[분류:1614년 태어남]]
[[분류:1687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