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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허손(부), 최씨 부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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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침'''(許琛 ; [[1444년]] ~ [[1505년]])은 [[조선 시대|조선]]의 [[문신]], [[시 (문학)|시인]]이다. 자는 헌지(獻之), 호는 이헌(頤軒)이며 본관은 [[양천 허씨|양천]]이다. [[조선 성종|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를 거쳐 [[동부승지]], [[좌부승지]], [[이조참판]], [[예조참판]], [[대사헌]], [[우승지]], [[좌승지]]를 지내고 한 때 전라도관찰사로 선정을 베풀기도 했다. 연산군 때 [[형조참판]], [[병조참판]]을 하다가 무오사화 때 좌천되어 경상도관찰사로 있다가 [[병조참판]], [[호조참판]], [[형조참판]], [[이조참판]]으로 특진관을 겸하고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신종호, [[조위]], 유호인 등과 함께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을 떨쳐 세자([[조선 연산군|연산군]])의 신임을 받았다. [[1489년]]에 《삼강행실》을 정리하였으며, [[1504년]]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었다. 성종 때 [[폐비 윤씨|윤비]] 폐위를 반대했기 때문에 [[갑자사화]] 때에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는 연산군의 옳지 못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관련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