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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oung Peter the Great of Russia.jpg|thumb|left|황태자 시절의 어린 표트르]]
[[파일:Nevrev 019.jpg|thumb|right|외국식 전통복 차림의 표트르]]
[[1672년]] 표트르는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차르]]와 그의 두 번째 황후인 나탈리아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 사이에서 알렉세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인 [[표도르 3세|페도르 3세]] 또한 일찍 죽자 [[정신지체]] 장애인인 둘째 형 [[러시아의 이반 5세|이반 5세]] 대신 귀족과 [[러시아 혁명]] 전까지 러시아 [[정치]]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던 [[러시아 정교회]]의 지지를 얻어 [[차르]]에 올랐으나, 이복누이 [[소피야 알렉세예브나|소피야]] 공주가 주동한 쿠데타로 표트르를 지지한 귀족들이 숙청된 탓에 실권을 잃고 소년기와 청년기를 크렘린 밖에 있는 외인촌에서 지내야 했다. 그래서 화려한 의식이나 불합리한 [[전통]]을 싫어했고 실리적이며 [[과학]]적인 것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외인촌 생활은 [[영국]], [[네덜란드]]등 서유럽 선진국가들에서 온 기술자들과 접촉하면서 최첨단[[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12살 때에는 석공술과 [[목수]]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젊은 나이에 [[말 (동물)|말]]에 편자를 박는 일, [[대포]]를 주조하는 일 등 벌써 십여가지 이상의 전문적이고 특수한 기술을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방면에 관심을 쏟으며 생활하던 그는 [[1689년]] [[모스크바]] 대귀족의 딸 로푸하나와 결혼했다. 이때부터 러시아 전통에 따라 성년의 시기를 맞이했으나 국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소년병]]들과 군인놀이를 하거나 기계를 관찰하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