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셔먼호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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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셔먼호의 공격과 평양성 군인 주민들의 반격: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상권과 무력 개입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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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 셔먼호의 공격과 평양성 군인 주민들의 반격 ===
[[8월 21일]]([[음력 7월 12일]]) 조선 측의 이와 같은 강경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셔먼호는 [[만경대 (평양)|만경대]] 한사정(閑似亭)에까지 올라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던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붙잡아 감금하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평양성 내의 관민(官民)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셔먼호에서는 소총과 대포를 이들 관민에게 마구 쏘아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ref>[[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1회 항해의 40명 죽음.</ref> 이와 같은 셔먼호의 무모한 행동에 대하여 강변의 군민은 돌팔매·활·소총으로 맞서 대항하고, 퇴교(退校) [[박춘권]](朴春權)은 배를 타고 가서 이현익을 구출해 내었다. <ref>[[보부상]]</ref>
 
영국인 [[최난헌]]이(매천야록에 미국인 최난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최난헌은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 목사의 한국이름이다.) 군함 1척을 이끌고 조수를 타고 [[대동강]]에 들어왔지만 조수가 밀려나가면서 군함은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ref name="lee34">{{서적 인용 |저자고리= 황현|기타= 정동호 옮김|제목= 매천야록|연도= 2011|출판사= 일문서적|쪽= 34}}</ref> 당시 며칠씩 계속된 비로 강의 수위가 높아졌다가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평상시 수위로 돌아가게 되자 셔먼호는 [[양각도]](羊角島) 서쪽 모래톱에 선체가 걸려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 셔먼호의 승무원들은 대포를 발사하는 등 폭력을 자행하여 평양 사람 7명이 죽고, 5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