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호 율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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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의 ==
7세기 후반 이후, [[백제]]의 멸망 등 [[동아시아]]의 긴박한 국제 정세 안에서, [[왜국일본]]은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고 국가로서의 독립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정권은 [[오미 령]](近江令), 아스카기요미하라 령을 제정하는 등 당·한반도의 통치제도를 참조하면서 왕토왕민 사상에 기반한 국가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그 집대성이 다이호 율령의 완성이다. 이는 [[645년]]의 [[다이카 개신]]과 660년대의 [[백제 부흥운동]]에서의 패전([[백강 전투]])의 영향으로 격화된 정치적 변혁으로 추진된 일본의 고대 국가 건설 사업이 일정한 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본 고대사상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이 율령의 반포를 일본의 [[율령제]]가 성립된 시발점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다이호 율령에 따른 통치는 당시의 정권이 지배하던 영역([[도호쿠 지방]]을 제외한 [[혼슈]], [[시코쿠]], [[규슈]]의 대부분)에 거의 일률적으로 파급되었다.
 
==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