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번째 줄:
 
== 생애 ==
경종 때 문과에 급제해 겸설서가 되고, 이후 영조 때 병조좌랑이 된다. 이후 외직으로 나가 현감을 하다 용강현령이 되고, 지평, 문학을 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는다. 이후 부교리와 이조좌랑을 거쳐 이인좌의 난 때 민심을 수습했고, 교리, 문학을 거쳐 시독관이 되고 다시 교리를 거쳐 종사관이 되고 도순무 종사관을 거쳐 난을 진압한 공으로 [[동부승지]]로 초배되고,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예조참판]]을 거쳐 다시 [[부제학]]과 [[대사성]]을 하고 [[도승지]]가 된다. 이후 참찬관과 부제조를 겸직했고, 연이어 이후 영조의 총애로 [[부제학]]과 [[도승지]]를 다시 지내고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대사성]]이 되고 다시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좌윤]]으로 내직에 들어왔다가 다시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외직으로 나가 민정을 다스렸다. 이후 [[공조참판]]으로 지경연사를 겸하고, 다시 [[부제학]]이 되었다가 [[이조판서]]로 승진하고, 이후 동지경연사를 겸한 뒤, 어영대장으로 임명되고, 연이어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평안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 거기서 민정을 돌보다가 이후 [[이조판서]]로 다시 임명되고, 수어사를 거쳐 빈객이 되고 [[이조판서]]를 다시 하고, 세자좌부빈객을 겸하다 [[이조판서]]로 지경연사를 겸임, 그리고 동지경연사, 우부빈객을 겸임하다 [[예조판서]]가 된다. 그리고 지경연사를 겸하다 [[예조판서]]가 되고, 연이어 다시 어영대장에 이어 [[우참찬]], [[형조판서]]를 한다. 이후 제조로 있다가 [[좌참찬]]이 되고, [[이조판서]]로 우빈객을 겸하고, 수어사를 하다 [[예문관]][[제학]]이 되고, [[이조판서]]와 [[판의금부사]]를 하다가 [[형조판서]], [[예문관]][[제학]], [[판의금부사]]를 하고 제조에 이어 [[이조판서]]를 다시 하고 [[형조판서]]로 지경연사를 겸하다 다시 [[좌참찬]]이 되고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호조판서]]를 거쳐 [[우참찬]], [[병조판서]]를 하고 이후 제조로 있다가 [[병조판서]]가 되고 이후 [[우의정]]으로 정승에 제수되고 이후 영경연사를 겸하다 [[우의정]]으로써 도제조와 호위대장을 겸하고 이후 영돈녕부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도제조가 되고 영돈녕부사로 존숭도감도제조에 이어 영돈녕부사로 도제조를 겸직하며 영조의 총애를 받다가 이후 영조에 의해 [[좌의정]]이 된다. [[좌의정]]에 있을 때 도제조를 겸하고, 사은 정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영돈녕부사가 되었다가 이후 [[영의정]]이 된다. 그러나 이후 영돈녕부사로 물러났고, 이후 [[좌의정]]으로 다시 임명된다. 이후 영돈녕부사로 치사한다.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분류:1690년 태어남]]
[[분류:1752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