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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군은 패수 상류의 위만조선군을 격파하고, 곧 나아가 왕검성 아래에 이르러 그 서북쪽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도 역시 가서, 모여서 왕검성 남쪽에 자리잡았다. 우거가 마침내 수개월을 견고하게 지켜내니 능히 없애지를 못했다.<ref>[[#사마천 115|사마천]] 〈권115〉“좌장군은 패수 상류의 군을 격파하고, 곧 나아가 성 아래에 이르러 그 서북쪽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도 역시 가서, 모여서 성 남쪽에 자리잡았다. 우거가 마침내 수개월을 견고하게 지켜내니 능히 없애지를 못했다.”/“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圍其西北。樓船亦往會,居城南。右渠遂堅守城,數月未能下。”</ref>
 
좌장군은 원래 시중(侍中)이었고, 천자의 총애를 받았으며, 연(燕)과 대(代)<ref>둘 다 땅 이름이다.</ref>의 병졸을 거느렸고, 사나웠으며, 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의 군사들은 많이 교만(驕慢)했다. <ref>[[#사마천 115|사마천]] 〈권115〉 “좌장군은 원래 시중(侍中)이었고, 천자의 총애를 받았으며, 연(燕)과 대(代)의 병졸을 거느렸고, 사나웠으며, 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의 군사들은 많이 교만(驕慢)했다.”/“左將軍素侍中,幸,將燕代卒,悍,乘勝,軍多驕。” </ref> 반면에, 누선장군 양복은 우거와의 전쟁에 소극적으로 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체가 위만조선을 급하게 치니, 위만조선의 대신(大臣)은 이에, 몰래 아랫사람을 시켜 양복에게 항복을 약속하였고 왕래하며 논의하였으나, 여전히 긍정적으로 결정하지 못하였다. 좌장군은 누선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를 것을 기약하였으나, 누선은 급하게 그 조선대신과의 약속을 성취(成就)하려 하였으므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좌장군 역시 아랫사람을 시켜, 그 사이, 위만조선을 물리치고 항복시키려 했으나, 위만조선은 수긍(首肯)하지 않았고, 위만조선 대신의 마음은 누선을 따랐다. 이런 이유로 두 장수는 서로 협력이 불가능했다. 좌장군의 마음 속에는 누선이 예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다는 사실이 있었고, 지금 조선과 사사로이 친하니, 또한 위만조선이 항복하지 않으므로, 그 어떤 배반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감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한 무제가 이르기를, “장수들이 능력이 없어 예전에 위산(衛山)을 보내어 우거를 항복하도록 회유(誨諭)하자, 우거는 태자(太子)를 보냈다. 위산(衛山)이 행하였으나,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었고, 좌장군과 일을 꾀하였으나, 서로 그르쳐, 마침내 약속을 깼다. 지금 양(兩) 장수가 성(城)을 포위하고는 있으나 또한, 서로 맞지 않고 달라서, 오래되도록 결정이 나지 않았다.”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한 무제는 이를 바로잡게 하려고 제남(濟南) 태수(太守) 공손수(公孫遂)를 보내어, 편의(便宜)를 가지고 이로써 일을 맡기에 이르렀다. 공손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이르기를, “조선이 당연히 항복하여야 함이 오래이나, 항복하지 아니함에는 어떤 정황이 있습니다.”라 하였다. 순체가 누선에게 여러 차례 기약(期約)을 말하였으나, 누선과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고, 원래 뜻하던 바에 의하여 일일이 공손수(公孫遂)에게 고(告)하여 이르기를, “이제 이와 같이 취하지 아니하니, 큰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은 혼자가 아니고 또한, 장차 조선과 함께 우리 군을 멸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공손수 역시 이를 그렇다고 여기고 나서, 부절(符節)로서, 누선장군을 좌장군 진영(陣營)에 들어 오도록 소환(召喚)하여 일을 꾸몄다. 즉, 좌장군 휘하(麾下)에게 누선장군 및 그의 군사(軍士)의 체포를 집행하도록 명하였다. 이를 한 무제에게 보고하자, 한 무제는 공손수를 죽였다. <ref>[[#사마천 115|사마천]] 〈권115〉 “좌장군이 이를 급하게 치니, 조선의 대신(大臣)은 이에, 몰래 아랫사람을 시켜 누선(樓船)에게 항복을 약속하였고 왕래하며 논의하였으나, 여전히 긍정적으로 결정(決定)하지 못하였다. 좌장군은 누선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를 것을 기약하였으나, 누선은 급하게 그 조선대신의 약속을 성취(成就)하려 하였으므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좌장군 역시 아랫사람을 시켜, 그 사이, 조선을 물리치고 항복시키려 했으나, 조선은 수긍(首肯)하지 않았고, 조선 대신의 마음은 누선을 따랐다. 이런 이유로 두 장수는 서로 협력이 불가능했다. 좌장군의 마음 속에는 누선이 예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다는 사실이 있었고, 지금 조선과 사사로이 친하니, 또한 조선이 항복하지 않으므로, 그 어떤 배반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감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천자가 이르기를, “장수들이 능력이 없어 예전에 위산(衛山)을 보내어 우거를 항복하도록 회유(誨諭)하자, 우거는 태자(太子)를 보냈다. 위산(衛山)이 행하였으나,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었고, 좌장군과 일을 꾀하였으나, 서로 그르쳐, 마침내 약속을 깼다. 지금 양(兩) 장수가 성(城)을 포위하고는 있으나 또한, 서로 맞지 않고 달라서, 오래되도록 결정이 나지 않았다.”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천자는 이를 바로잡게 하려고 제남(濟南) 태수(太守) 공손수(公孫遂)를 보내어, 편의(便宜)를 가지고 이로써 일을 맡기에 이르렀다. 공손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이르기를, “조선이 당연히 항복하여야 함이 오래이나, 항복하지 아니함에는 어떤 정황이 있습니다.”라 하였다. 누선에게 여러 차례 기약(期約)을 말하였으나, 누선과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고, 원래 뜻하던 바에 의하여 일일이 공손수(公孫遂)에게 고(告)하여 이르기를, “이제 이와 같이 취하지 아니하니, 큰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은 혼자가 아니고 또한, 장차 조선과 함께 우리 군을 멸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공손수 역시 이를 그렇다고 여기고 나서, 부절(符節)로서, 누선장군을 좌장군 진영(陣營)에 들어 오도록 소환(召喚)하여 일을 꾸몄다. 즉, 좌장군 휘하(麾下)에게 누선장군 및 그의 군사(軍士)의 체포를 집행하도록 명하였다. 이를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공손수를 죽였다.”/“左將軍急擊之,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往來言,尚未肯決。左將軍數與樓船期戰,樓船欲急就其約,不會;左將軍亦使人求閒卻降下朝鮮,朝鮮不肯,心附樓船:以故兩將不相能。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疑其有反計,未敢發。天子曰將率不能,前(及)[乃]使衛山諭降右渠,右渠遣太子,山使不能剸決,與左將軍計相誤,卒沮約。今兩將圍城,又乖異,以故久不決。使濟南太守公孫遂往(征)[正]之,有便宜得以從事。遂至,左將軍曰:「朝鮮當下久矣,不下者有狀。」言樓船數期不會,具以素所意告遂,曰:「今如此不取,恐為大害,非獨樓船,又且與朝鮮共滅吾軍。」遂亦以為然,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即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并其軍,以報天子。天子誅遂。”</ref>
 
좌장군은 그 후 양군(兩軍)을 아울러 위만조선을 급히 쳤다. 조선 상(朝鮮相) [[노인 (고조선)|노인]](路人)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항복한 사이, 왕검성에서는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 (고조선)|성기]](成己)가 병권을 장악했으나,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노인의 아들 [[최 (위만조선)|최]](最)를 시켜 그 백성을 하소연하고 타일러, 성기를 죽이니 이로써 마침내 위만조선을 평정하고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었다. <ref>[[#사마천 115|사마천]] 〈권115〉 “좌장군은 그 후 얼마되지 아니하여 양군(兩軍)을 아우른 즉, 조선을 급히 쳤다. 조선 상(朝鮮相) 노인(路人)·상 한음(相韓陰)·니계 상 참(尼谿相參)·장군 왕겹(王唊)이 서로 참여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당초에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홀로 좌장군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전쟁은 점차 급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은 또한 항복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한음·왕겹·노인은 모두 도망쳐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道中)에 죽었다.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 상 참은 아랫사람을 시켜 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검성(王險城)이 항복하지 않으니, 고(故)로,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成己)가 또한 모반하여, 다시 벼슬아치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노인의 아들 최(最)를 시켜 그 백성을 하소연하고 타일러, 성기를 죽이니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四郡)이 되었다.” / “左將軍已并兩軍,即急擊朝鮮。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并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路人道死。元封三年夏,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王險城未下,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復攻吏。左將軍使右渠子長降、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誅成巳,以故遂定朝鮮,為四郡。”</ref>
 
그 뒤, 좌장군 순체는 전쟁에서 공(功)을 다투고 양복과 서로 질투(嫉妬)하였다는 죄목으로 기시형(棄市刑)을 당하였다.<ref>[[#사마천 115|사마천]] 〈권115〉 “좌장군은 응징(膺懲)하기에 이르러, 공(功)을 다투고 서로 질투(嫉妬)하였으므로, 기시형(棄市刑)을 당하였다.”/“左將軍徵至,坐爭功相嫉,乖計,棄市。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當待左將軍,擅先縱,失亡多,當誅,贖為庶人。”</ref>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