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청천강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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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청천강 전투'''는 [[한국 전쟁]] 중기 11월 초 북부로 진격하던 국군이 중공군과 조우하여 격전을 벌인 전투로 수적 열세 속에서 격전을 치른 국군은 인해전술로 침공하는 중공군에 맞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국군은 수적 열세로 인해 후방의 부대를 급거 전방으로 이동시키는 필사적인 전투를 벌여 중공군을 격퇴하고 진격하였으나 이후, 철수를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된다. <ref> 한국전쟁사 (국방부, 전쟁기념사업회) </ref>
 
== 배경 ==
[[1950년]] [[10월 24일]] 맥아더(MacArthur) 라인의 철폐선언에철폐 선언에 따라 [[만포진]]-[[신의주]]의 한만국경선을 목표로 무제한진격을 개시한 미 제8군은, [[10월 25일]]에 [[김종오]] 준장이 이끄는 제6사단의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와 미 제1군단의 우익인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제1사단이 각각 [[온정리 전투]]와 [[운산-영변 전투]]에서 중공군 대부대와 접전하여 격전을 벌임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임부택]]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7연대는 [[초산]]까지 진격하였다가 명령에 따라 반격을 시작하여 [[두만강]]변에서 또 다시 중공군의 급습으로 분산된 데에 이어 제2연대를 증원한 [[김익렬]]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 19연대와 [[고근홍]] 대령이 이끄는 제8사단 10연대가 [[온정리]] 부근에서 중공군의 공세로 큰 타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