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엠레아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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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보
| 정식표기 = ក្រុងសៀមរាប
| 그림 = Street near Siem Reap River.jpg
| 그림설명 = 시엠레아프 강 근처의 거리
| 이름 = 시엠레아프 (씨엠립)
| 지도 = LocationSiemReapCity.png
| 나라 =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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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엠레아프'''({{llang|km|ក្រុងសៀមរាប}}, {{llang|en|Siem Reap City}})(씨엠립. 이하 두 명칭 혼용)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주의 주도이다. 씨엠립은 17세기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앙코르 와트]], [[바이욘]] 등이 있는 [[앙코르 유적군]] 관광의 거점이 되는 도시이다.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 호]]가 있다.
 
오늘날 시엠레아프는 인기있는 관광 도시이며 수많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현지 거주민들은 옛 시장 지역에 있고, 값비싼 호텔은 주로 [[시엠레아프 국제공항]]과 6번 국도를 따라서 있다.
 
== 역사 ==
시엠레아프라는 이름은 "시암 격퇴"라는 의미이다. 시암은 오늘 날의 [[타이]]로 17세기 [[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관련된 지명이다.
 
1901년 프랑스 극동 학회는 바이욘을 탐사하는 기금모집의 일환으로 앙코르에 대한 긴 협의를 시작하였다. 타이의 통치 하에 1907년 씨엠립는 캄보디아에 반환되었고, 프랑스 극동학회는 전체 유적을 청소하고 복원하는 책임을 졌다. 1907년 첫 번째 탐사대 200명이 3개월에 걸쳐 시엠레아프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앙코르 와트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시엠레아프는 프랑스 탐험대들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조그마한 마을이었고, [[1907년]] 프랑스 통치 하에 캄보디아에 반환됨으로써 여행자들의 발길을 받아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The Grand Hotel d'Angkor는 [[1929년]]에 문을 열었고, [[찰리 채플린]]이나 제키 케네디와 같은 방문자들에게 앙코르의 여러 사원들은 [[196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빛나는 유적으로 각광 받았다.
 
[[1975년]]에 들어서 [[크메르루즈]] 반군을 피해 외곽으로 러쉬가 이뤄졌다. 씨엠립의 역사는 1998년 폴 포트의 사후에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전쟁의 발발로 긴 잠에 빠졌던 시엠레아프는 90년대 중반에 들어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오늘날 시엠레아프는 확실히 캄보디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는 도시이다. 앙코르 유적들은 매력적인 세계 유산으로 남아서, 주요 관광의 허브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시엠레아프에는 현대식 호텔과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이러한 빠른 발전은 물가상승과 더불어 부동산 폭등 등의 부작용을 낳았지만, 이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시엠레아프의 사람들은 전통과 문화, 이미지 보존에 적극적이다.
 
== 볼거리 ==
시엠레아프에는 5성급 고급 호텔부터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박이 있다. 또한 한식이나 일식을 비롯하여 이태리 식당, 프랑스, 독일, 러시아, 타이 음식까지 다양한 종류의 숙박이 있다. 또한 사르 차를 비롯하여 많은 전통 시장과 새로이 만들어진 시장이 있고, 서양식 펍과 나이트 라이프까지 다양하다.
 
시엠레아프 국제공항은 이곳을 접근하는 주요 통로이며, 많은 여행객들은 대부분 시내 북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앙코르 와트]]나 [[앙코르 톰]], 그리고 [[톤레삽 호]]를 비롯하여 기타 앙코르 유적을 방문한다. [[압사라 댄스]]와 같은 다양한 문화적 볼거리를 비롯해 어촌마을이나 공예품점, 실크 공장 등을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서 돌아볼 수 있다.
 
=== 앙코르 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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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지뢰박물관 ===
이곳 지뢰박물관은 지뢰사상자 퇴역군인들의 단체인 아키라에 의해 운영되는 지뢰박물관이다.
 
=== 캄보디아 국립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