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일본 국경 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결과 ===
하산 호 전투 및 할힌골 전투에서의 패배로 인해 일본은 극동 지방으로의 진출을 다시 고려해야 했다. 이 무렵 일본은 중국과 전쟁 상태에 있었고, 독일 및 이탈리아와 방공 협정을 맺어 국제적으로도 고립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40년 일본은 소련과 [[소련-일본 중립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일본은 극동 지방을 공략하는 대신, 중국 본토를 침공하였다. 1941년부터 실제로 두 국가는 전쟁을 거의 벌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경우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미국 및 연합국과의 전쟁에 휘말렸기 때문이고, 소련의 경우에는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독일과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일본 침공안이 협의되기 전까지 두 나라 사이에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다. 실제로 독일은 일본에게 소련 침공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할힌골 전투의 패배 이후 [[소련-일본 중립 조약]]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2차 전쟁 ==
{{본문|8월 폭풍 작전|소련 대일전 참전}}
=== 배경 ===
==== 얄타 회담 ====
{{본문|얄타 회담}}
1945년 2월, 얄타에서 열린 회담에서 서부 연합국 측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은 [[소비에트 연방]] 측에 일본에 대한 공격을 요구했다. 이에 이오시프 스탈린은 한반도를 온전한 상태로 남겨 소련군이 공격에 유리하게 해달라고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말했다. 이에 따라 회담 당사국들은 소련의 일본군 공격을 [[만주]], [[연해주]]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수행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그러나 소련은 1945년 초에 일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 일본 본토 공습 ====
{{본문|일본 본토 공습}}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