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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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이름==
이탈리아에서 68 운동은 대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프랑스나 미국, 독일 등지의 운동과는 달리 처음부터 젊은 노동자들의 운동이었다. 68/69년 당시의 노동자 대투쟁에서 “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노동자의 자율)라고 스스로를 지칭한 노동자주의적 사회운동은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아우토노미아 오페라이아 그룹은 투쟁적 운동으로써, 데모에서 경찰에 폭력적으로 맞섰으며, 공장에서의 사보타주를 주도했다. 노동자와 학생 뿐 아니라 노숙자와 실업자들도 이 운동에 함께 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공산당과 주류 노동조합의 노선을 강하게 거부하였으며 “노동자주의 (오페라이스모)”라고 불리는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의 핵심적 요소가 “자율”이었다.
당시 [[안토니오 네그리]], 마리오 뜨론띠 등의 지식인 그룹은 자신들이 속한 대학 뿐 아니라 노동현장에 열정적으로 참가했으며, 이들의 참여는 단지 지식인의 계몽적 역할에 머물지 않고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의 모습에 상응하는 그런 것이었다. 공장에서의 (전통적인 노동조합까지도 포함하는) 지배관계와 맞서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주의와 자율주의의 이론이 태동하였고, 이후 70년대에 이 운동과 이론은 공장을 넘어서서 사회 곳곳의 여러 분야를 공격하게 된다. 이들은 도심에서의 [[스쾃|건물 점거]], 대안미디어(자유 라디오 등), 대중교통 집단 무임승차 등의 운동방법들을 개발하였으며, 여성운동, 생태운동, 반전평화운동과 결합했다.
70년대 후반 일각의 테러주의와 이에 대응하는 경찰국가의 강경한 탄압으로 인해 노동자주의는 약화되었지만 자율에 대한 이들의 이해, 즉 노동조합과 당과의 연결로부터 자주적인 정치적 투쟁, (고정된) 조직과 지도 없는 자생적인 운동에 대한 강조는 이후로 이탈리아 바깥의 “자율주의자”들이 자신들을 규정하는 내용이 된다.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운동과는 달리 독일어권에서는 노동운동에서 노동자주의의 영향을 받은 실천이나 이론이 커다란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독일연방공화국에서 자율주의의 역사==
독일에서의 자율주의 운동은 6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 와중에 의회 밖 좌파 운동(APO) 전통에서 등장했다. 서베를린의 코뮨1 운동을 비롯한 “Spaß 게릴라” 행동이나 소위 “자발성 운동”등의 신좌파들은 독일 자율주의의 내용과 행동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