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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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의자들의 이론적인 토대에선 “삼중의 억압”이 종종 이야기 된다. 이것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계급문제의 복합을 말한다.<ref>[[Ingrid Strobl]] u.a.: ''Drei zu Eins'', ID-Archiv, Berlin 1993, ISBN 3-89408-029-9 [http://www.idverlag.com/BuchTexte/DreiZuEins/DreiZuEins.html Online-Ausgabe]</ref> 이러한 이론은 상품의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를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으로 보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고전과 관점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 세 가지 권력형식으로 구성된 관계망 속에서 각각의 삶의 상황을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은 자율주의 경향들 속에서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에서는 노동의 해방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관계를 거부하는 실천(평의회등)을 통해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가치비판이론”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위문화에서의 영향==
1980년대 초반부터 하위문화)로서하위문화로서 음악 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펑크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상업화된 록과 팝음악 및 관습적인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반기를 들었고, 당시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자율주의자들의 상당수에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좌파 이론은 “멋진 전복적” 유머들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집단들 중에는 자율주의적인 학생-여성운동, 남성운동, 동성애 운동의 여러 근원들이 있었다.
80년대 말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율주의 씬을 떠나게 된다. 당시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그들에게 저질러진 성역할 부여와 성폭력을 이슈화 하고, 해결을 요구하게 되면서 성별화된 “섹시즘”의 문제의식이 운동사회 안에서 폭발적을 확산되었던 것이다.보쿰에서는 여성활동가들이 자율센터에서의 섹시즘에 대한 논쟁 이후 남성 활동가들의 퇴거를 요구하였고, 공간을 “자율주의 여성 센터”로 이름붙인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각 지역의 섹시즘 논쟁 이후 조직이 분열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율주의 여성/레즈비언” 씬의 비판자들에게 이들은 도덕적 엄숙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상 자율주의 집단들은 이 질문에 있어서 매우 이질적인 채로 남게 되었다. 90년대 초에는 자율주의자 게이들이 “Tunten (여성적으로 여겨지는 동성애자들을 지칭)-테러-투어”의 일활으로 Fulda시의 카톨릭 성당 앞에서 소위 “Sex-In”을 하기도 했다.같은 시기에 채식주의나 비건 운동이 자율주의 씬에서 주요 테마로 대두되었다. 폭력투쟁과 관련해서는 매우 강한 분파화가 있기도 했다. 한편에선 헬멧과 유니폼으로 신분을 숨긴 블랙 블록의 투쟁을 원천적인 자율주의의 데모 형태라고 굳게 주장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런 방식을 “의례적 폭력투쟁 페티시”라고 비판하고, “Pink and Silver”와 같은 새로운 행동양식이나 “저항의 리듬”과 같은 정치적 타악기 그룹들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같이 보기==
*[[안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