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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 5년인 [[1127년]]에 [[이자겸]]을 배신하고 [[척준경]]이 이자겸에게 오라를 던지자 [[이자겸의 난]]이 끝나게 되었으나, 이자겸의 횡포로 개성의 궁궐을 다시 지었다. 이때 [[문신]] [[정지상]]이 [[풍수]]의 대가 [[승려]] [[묘청]]을 소개해 주었고 묘청은 [[왕]]의 [[고문]]이 되었다. 묘청은 이자겸의 난이 [[개경]] 부근의 땅 기운이 다했기 때문이라며 서경으로 천도하라고 왕을 꾀었고, 서경 출신의 관료 [[정지상]], [[백수한]] 등도 그 뜻에 같이했다. 처음에 왕은 서경 천도를 거의 할 것같은 분위기였고, 인종은 계속 서경으로 행차하면서 그 뒤를 밟던 묘청은 오묘한 말로 왕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결국 서경에 [[대화궁]]이 지어졌는데, 조정은 [[묘청]]의 서경파와 [[김부식]]의 개경파로 갈라져 있었다. 대화궁에는 [[벼락]] 등이 떨어져 궁에 [[불]]이 붙고 잦은 [[천재지변]]과 변고가 일어나자 인종은 서경 천도에서 마음이 떨어졌다. 묘청은 그 소식을 듣고 더운 기름을 묻힌 오색 떡을 강물에 던져놓고는,
 
"오색의 영롱한 물은 용의 침이옵니다침입니다. 용이 서경으로 가라는 뜻을 밝히는 것이 아니겠나이까아니겠습니까?"
 
인종은 강 속을 뒤져 떡을 발견하였고 서경천도가 완전히 취소되자 서경천도를 실현시키려고 묘청은 대위국을 세운 것이다. 묘청은 개경 출신의 대소신료부터 노비까지 모두 싹 감옥에 쳐놓고 조광과 난을 도모하여 대위국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