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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imon Wiesenthal (1982).jpg|thumb|200px|Simon Wiesenthal]]
'''지몬 비젠탈'''({{llang|de|Simon Wiesenthal}}, [[1908년]] [[12월 31일]] ~ [[2005년]] [[9월 20일]])은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학살 전쟁 범죄([[홀로코스트]]) 연구가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를 연구하며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 학살자들을 추적하였다.
 
[[2004년]] [[영국]] 명예[[대영 제국 훈장|KBE]]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다.
 
 
== 생애 ==
[[1939년]] 르부프가 소련에 점령되었고, 그는 건축업을 할 수 없게 되고 [[시베리아]]의 노동 수용소([[굴락]])으로 추방될뻔 하다가 위기를 면했다. 그러나 그 후 [[독일]]에 점령당하자 유대인인 그는 강제수용소행을 피할 수 없었으며, 여러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했다. 그의 친척과 가족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에 희생되었고, 그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1945년 5월]] 해방을 맞아 풀려났고, 그 후 [[오스트리아]]에 주둔하던 미군을 도와 전쟁 범죄 자료를 모으는 일을 했다. [[1947년]], 그는 여전히 미군 관리하에 있던 [[린츠]]에 자료센터를 설립하였다. 린츠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출신지로, 그 곳에서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 [[이스라엘]]의 [[모사드]]와 협력하여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잠복해 있는 것을 찾아내 그를 이스라엘로 송환하였다. 새로운 문서 자료센터가 [[1961년]] 빈에 문을 열었고, 계속하여 많은 유대인 학살 관련자들을 추적하여 고발하여 그는 '나치 사냥꾼'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이름을 기리는 [[지몬 비젠탈 센터]]가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설되어 홀로코스트 만행을 고발하는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토막글|오스트리아}}
{{추축 전범들의 전후 탈주}}
{{Authority control}}
 
{{기본정렬:비젠탈, 시몬}}
{{토막글|오스트리아}}
 
[[분류:1908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