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궤구고두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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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제2차 쇼씨 왕조 시대에 청나라 책봉사가 도착하면 국왕과 관원들은 황제에 대한 예를 의미하는 ‘수례지방’(守禮之邦)의 편액이 걸린 [[슈레이 문]]에서 책봉사를 맞이하였고, [[슈리 성]]의 궁전에서 삼궤구고두례의 의식을 행하였다.
 
[[후금]]의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으로 새롭게 하고 황제에 즉위하여 [[조선]]에 조공과 [[명나라]] 출병을 요구하였다. 조선 국왕 [[조선 인조|인조]]가 이를 거절하자 [[숭덕제]]는 [[1636년]] 12월에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출병하였고, 조선은 불과 두 달 만에 항복하였다. 인조는 [[음력 1월 30일]]에 [[삼전도]](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석촌석촌호수 호수부근부근)에서 숭덕제를 향해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며 항복 의식을 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pa_11501030_002&mTree=0&inResult=0&indextype=1|제목=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나아가다|저자=인조실록|출판사 =국사편찬위원회|날짜=1637-01-30|확인일자=2013-06-16}}</ref>
 
[[1793년]] [[대영 제국]]의 외교관 [[제1대 매카트니 백작 조지 매카트니|조지 매카트니]]가 [[건륭제]]를 알현할 때 삼궤구고두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고, 매카트니는 영국식을 고집하였으나 쟁론 끝에 중국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ref>{{뉴스 인용|제목=오늘의 경제소사/9월14일 <1500> 매카트니 사건|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2025056|출판사=서울경제|저자=권홍우|날짜=2009-09-13|확인날짜=2013-06-16}}</ref> [[1816년]] [[윌리엄 애머스트]](William Amherst)도 삼궤구고두례를 요구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여 [[가경제]]를 알현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