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두앵 1세 (예루살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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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성묘의 수호자였던 형 고드프루아가 죽을때, 보두앵은 [[에데사 백국]]을 보두앵 드 부르에게 물려주고, 예루살렘에 들어가 예루살렘 왕 보두앵 1세가 되었다. 왕국 남부에서 이집트 [[파티마 왕조]]와 싸워 위세를 떨쳤고, 십자군 귀족의 반대를 누르고 정식으로 그해 12월 예루살렘 왕이 되었다. 예루살렘 총대주교 였던 [[다임베르트]]는 예루살렘을 교황령으로 만들기를 원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는데는 협력했다.
 
[[1101년]]의 십자군은 람라에서 대패했으나, 그후 [[아르수프]](현재 이스라엘의 텔아르샤프)와 [[카이사레아]](이스라엘의 호르바트케사리)을 장악했고, [[1112년]]까지 [[아스칼론]]과 티레를 제외한 [[아크레|아콘]], 람라, [[트리폴리 (레바논)|트리폴리]], 시돈, [[베이루트]]등 지중해 근해의 모든 해안도시를 점령해 영토을 넓혔다. [[1115년]] 왕국 남부를 지키기 위해 크라크 드 몽레알 성을 짓고, [[1113년]]에 아내를 수녀원에 유폐하고 시칠리아 백작의 미망인 사오나의 아들레이드와 결혼했으나 후계자 없이 [[1118년]] 이집트 원정중에 식중독에 의해 사망했다. 뒤를 사촌인 에데사 백국을 물려받은 [[예루살렘의 보두앵 2세|보두앵 드 부르]]가 제2대 예루살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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