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장려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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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
 
이 운동은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 민족 지도자들과 [[경성부|경성]]의 연희전문학교 학생 [[염태진]]등이 [[이광수]]의 지도 아래 자작회를 조직하고 이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렇게 비롯된 국산품 애용운동은 일본 기업들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경제적 예속화와 경제적 착취를 당해오던 조선인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 소비조합을 비롯한 민족기업 등의 설립을 촉진시켰으며, 이 움직임이 [[인천]]을 거쳐 경성에서의 '조선물산장려회'의 창립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경성에서 조직된 '토산품애용부인회'와 [[경상남도]] [[의령]]에서 시작된 '토산품장려 및 금연실천운동'등, 그 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금주단연운동, 토산품 애용운동은 상인들 모두 동참하고 협력하면서 거족적 애국운동으로 확대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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