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 고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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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다카마쓰 고분의 발굴조사는 1972년 3월 1일부터 개시되었다. 1970년 10월경 마을 사람이 [[생강]]을 저장하려고 굴을 파다가, 내부에서 오래된 다듬어진 돌을 발견한 것이 발굴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현지의 사람들이 아스카 마을을 움직여, 아스카 마을의 자금으로 나라현립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橿原考古学研究所)가 발굴조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아스카 마을에서는 마을이 발족한 15주년을 기념하여 마을 역사를 편찬하기 위해 조사되지 않은 유적의 발굴을 진행하였고, 다카마쓰의 발굴도 그 일환이었다.<ref>발굴을 위한 자금은 가와라사(川原寺)에서 발견된 벽돌 불상(塼佛)의 발굴을 위해 모금된 예산 50만 엔이 사용되었다. - 網干善教, 《高松塚への道》, 草思社, 2007년</ref> 나라 현립 가시하라 고고학 연구소 소장인 스에나가 마사오(末永雅雄)의 지휘하에, 현장에서의 발굴은 다테 무네야스(伊達宗泰)와 [[간사이 대학]]의 조교수인 아보시 요시노리(網干善教)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대학교 류우코쿠 대학의 연구자와 학생 팀에 의해 시행되었다. 석실이 발견되고, 선명하게 채색된 벽화가 발견된 것은 같은해 3월 21일경이었다. 고분은 1973년 4월 23일, 특별사적(特別史跡)으로, 그리고, 극채색벽화는 1974년 4월 17일에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가마쿠라 시대 즈음에 도굴되어 석실의 남쪽 벽에는 도굴 구멍이 나 있었으나, 벽화의 채색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도굴을 피한 부장품의 일부도 발견되었다. 극채색화의 출현은 일본 고고학사상 드믈게 볼 수 있는 대발견으로서, 문화청(文化庁)은 곧바로 벽화의 보존 대책과 연구조사에 들어갔다. 다카마쓰 고분 응급보존대책조사회가 설치되어, 발견으로부터 1개월도 지나지 않은 1972년 4월 6일과 4월 17일에 처음으로 학술조사가 실시되었다. 또한, 응급보존대책조사회에는 별도로 고고학, 미술사, 보존과학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다카마쓰 고분 총합학술조사회(高松塚古墳総合学術調査会)가 설치되어 1972년 10월에 학술조사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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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고리|ja}} [http://www.asuka-park.go.jp/tumulus/takamatsu.html 国営飛鳥歴史公園 高松塚古墳 (국영 아스카 역사공원 - 다카마쓰즈카 고분)]
 
{{Authority control}}
[[분류:일본의 유적]]
[[분류:나라 현의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