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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377년(고려 충렬왕 33년)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1833년(조선 순조 33년)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헌종 10년) 영담, 정암 등의 스님이 나서 중건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해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가 1964년에야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1년 [[1·4 후퇴]] 때 절이 인민군에 점령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월턴 워커]] 미8군 사령관과 [[김백일 (1917년)|김백일]] 육군 1군 군단장이 오대산 사찰의 소각을 지시했다. 월정사도 팔각구층석탑 이외의 건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몇 달 뒤 김백일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이를 사찰을 훼손한 것에 대한 업보라 여겨 이후 월정사에 그의 위패를 안치했다.<ref>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13</ref>
 
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 오대산을 뒤로 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가람 배치는 일직선 상에 놓는 일반적인 신라 시대 양식과는 달리 탑 옆쪽으로 부속 건물이 세워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한국 전쟁]]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현대에 새로 중창한 것이다. [[방한암]]과 [[탄허]] 등의 고승이 이 곳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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