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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회주의]] 국가'''(社會主義國家)의 '''조직 원리'''를 설명한다.
== 사회주의와 국가 ==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기업]]이나 [[철도]]·[[은행]] 등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가 이런 것을 소유한다는 [[사회주의]] 제도를 취하고 있든가 또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
 
사회주의 하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 사회주의의 건설은 사회관계의 변혁을 뜻하며, 이 변혁을 조직하고 추진하는 역할은 국가에 주어져 있다.
# 사회주의하에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기본적으로는 국가적 소유의 형태를 취하고, 국가는 경제를 자기의 손으로 계획적으로 조직하고, 발전시킬 임무가 있다. 사회주의는 엄밀하게는 생산수단이 사회에 의해서 소유되고,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가 '각자는 그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는 그 일에 따라서 받는다'라는 원칙에 의거해서 행해지는 체제를 뜻한다.
 
이에 대해서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하에서 '각자는 그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는 그 필요에 따라 받는다'라는 원칙을 체제원리로 하고 있으나 그 본질적인 모순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내용 자체조차 이행되지 않았으며 왜곡의 골만 깊어졌다. [[마르크스]]·[[레닌]]은 공산주의가 실현되면 국가는 비권력적 자치조직으로 이행한다고 상정하였으나 현실의 상황은 소수자지배에 의한 국가권력의 광역화였다. 이하에서는 [[스탈린주의]]([[고르바초프]]의 개혁 이전) 당시의 사회주의 권역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 인민 민주주의 국가 ==
[[제2차대전]] 후에 동구와 [[아시아]]에 나타난 사회주의국가는 처음에는 소위 '''인민 민주주의''' 국가라고 일컬어졌다. 인민 민주주의라는 말이 생긴 것은 이들 나라가 [[11월혁명]] 뒤의 [[소련]]과는 다른 제도·다른 정책을 취한 까닭이다. 소련에서는 [[공산당]]이라는 하나의 정당만이 혁명과 신국가 건설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인민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과 다른 정당 및 사회단체로 구성된 통일전선이 신정권(新政權)의 모체가 되었다. 소련과는 달리 소위 인민 민주주의국가에 있어서의 최초의 개혁은 정치·경제·사회 전체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기치 밑에서 행해졌다. 이러한 개혁 중에서 은행이나 대기업의 국유화라는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 건설의 제1보를 뜻하고 있는 개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민 민주주의국가는 처음 단계에서는 자본주의 전체를 없이 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소련에서는 혁명 전의 국가기관이 혁명과 동시에 폐지되고, 새로운 국가조직이 과거와는 관계 없이 건설되어 왔으나, 동구의 약간의 소위 인민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낡은 국가기관의 체계가 일부 수정되어 이용되었다(선거 연령의 인하, 제2원의 폐지 등). 그러나 동구의 소위 인민 민주주의 여러 나라는 [[1947년]]에서 [[1948년]]에 걸쳐 차례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노선을 명확하게 하고, 기업 국유화의 범위를 확대하여 농업의 사회주의화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기구도 대폭으로 재편성되고, 정치적 세력도 재편성되었다(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의 통합, 반사회주의 정당의 금지). 이러한 전환 이후, 인민 민주주의국가도 사회주의국가인 것이 확실하여지고, 이에 따라 인민 민주주의라는 말도 차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 전환 이전의 인민 민주주의국가의 본질이 어떠한 것이며,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인가, 또는 그 이전 단계인 노농(勞農)민주독재의 국가이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간에도 설이 일정하지 않고, 오늘날에는 나라에 따라서 상황이 다른 점이 지적되고 있다.
 
=== 소비에트 제도 ===
'''소비에트 제도'''는 사회주의국가에 공통된 정치조직의 원칙이다. '[[소비에트]](Soviet)'라는 러시아어는 원래 회의·평의회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사용되었다. 따라서 소련최고소비에트 대신에 소련최고회의라는 말을 사용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비에트라는 말은 러시아 혁명운동 중에 특별한 뜻을 갖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러시아에서는 [[1905년]]에 최초로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 혁명은 유산(流産)으로 그쳤다. 그러나 이 1905년의 혁명 때에, 러시아 각지에서 노동자 대의원 소비에트가 노동자의 정치투쟁을 지도하는 기관으로서 만들어졌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3월(당시 러시아력으로는 2월)에 2회째의 혁명이 일어나서 제정(帝政)이 쓰러졌으나, 이 3월혁명 때에 각지에서 노동자·병사대의원 소비에트가 만들어지고 일부의 농촌에서는 농민대의원 소비에트가 만들어졌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11월(당시 러시아력으로 10월)에 3회째의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정권이 수립되었다. 이 정권은 노동자·병사대의원 소비에트의 전국대회에 의하여서 수립된 것이고, 각지의 소비에트가 시(市)소비에트 또는 부락소비에트로서 새로운 국가기관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이 혁명시의 소비에트는 종래의 의회와는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 도시의 소비에트 대의원은 공장 기타의 생산단위에서 열린 노동자의 집회에서 선출되었다. 이 방법을 취함으로써 소비에트는 생산단위의 노동자집단과 깊은 연결을 가지려고 했다.
# 이 노동자의 집회는 선거를 할 뿐만 아니라 정책을 토의하고 그 결론을 '선거인의 훈령'으로서 대의원에게 준다.
# 집회는 대의원으로부터 활동보고를 듣고,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면 언제든지 대의원을 해임(리콜)하여 새로운 대의원을 선출한다.
이와 같이 소비에트는 '선거인의 훈령', 대의원의 보고의무, 리콜 제도에 의해서 선거 때만 선거인이 의회와 관계를 갖는 그 때까지의 대의제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충하고 대의제기관과 대중과의 일상적인 연결을 만들고자 했다. 소비에트는 그 자체의 구조에서도 지금까지의 의회와는 달랐다. 즉 보통의 의회제도의 경우, 집행기관인 정부는 의회와는 별개로 의회 밖에 설치되었다. 정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방대한 관료기구이며 의회에 의한 정부의 감독이란 것도 명목적인 것이 되기가 쉽다. 이에 대해서 소비에트는 의회인 동시에 정부의 역할도 겸하려 했다.
 
구체적으로는 많은 수로 구성되는 소비에트의 총회는 정책을 결정하고, 그 집행을 총회가 대의원 중에서 선출하여 조직하는 집행위원회에 맡긴다. 동시에 집행위원이 되지 않은 대의원의 전원이 분과회에 들어가서 행정적인 역할을 분담하는 체제도 이룬다. 이 분과회에는 대의원이 아닌 활동가도 많이 참가한다. 이와 같은 제도를 취함으로써 소비에트는 관료의 힘에 의하지 않고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상이 11월혁명 때의 소비에트 제도인데, 이 제도의 이념을 그대로 취하고는 있으나 실제의 제도에는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있다.
 
=== 대의제 ===
사회주의의 여러 나라는 권력은 노동자로부터 발생한다는 소위 노동자주권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초기의 소련은 이 원칙에 의거하여 선거권을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만 주었으나, 오늘날의 사회주의 헌법은 같은 원칙을 취하면서도, 선거권을 18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주고 있다. 지난날의 소련에서는 시(市)소비에트의 대의원 선거는 공장 등의 생산단위의 집회에서 행하여졌으나, 현재는 사회주의 여러 나라에서 지역단위의 선거원칙을 취하고 있다. 즉 선거는 선거구라는 지역을 단위로 해서 행하고, 투표는 투표구마다 투표장에서 행한다. 다만 공장 등 생산단위의 노동자 집회는 투표 전의 정책과 후보자의 대중토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이상의 예로서 유고슬라비아의 코뮌 의회의 제2원인 '노동공동체원'의 선거권은 기업이나 관청의 노동자 직원과 협동조합 농민에게만 주고 있고, 투표는 생산단위로서 행한다. 그리고 소련에서는 생산단위의 선거구의 부활론이 나타나고 있다). 후보자의 지명권은 정당·노동조합·사회단체·노동자그룹에 주어진다.
 
스탈린 헌법하의 소련에서는 정원 1명인 [[소선거구제]]하에서 각 단체가 협의하여 후보자 1명을 뽑고, 그 1명만이 통일후보로서 계출되고, 유권자의 일반투표에 회부하는 방식이 취해진다. 이 경우의 투표는 실질적으로는 신임투표를 뜻한다. 이 방식에 대해서는 소련내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폴란드]]에서는 각 선거구별로 정원 이상의 후보를 세우고(중선거구의 경우는 정원 플러스 3분의 1, 소선거구의 경우는 2명), 최종적 선택을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는 방법이 취해졌었는데 이 방식은 구 동구권의 동독·[[헝가리]]에서도 채용되었다.
 
사회주의 여러 나라에서는 일반 시민과 대의제기관과의 연결은 투표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각국의 헌법은 의원에게 선거인에 대해서 보고할 의무를 과하고, 언제든지 리콜할 수 있는 권리를 선거인에게 주고 있다(소련에서는 리콜 투표는 공장 이외의 생산단위마다 집회에서 행하여진다). 또 각국의 법은 선거인이 집회를 열고, 대의원에 대한 '선거인의 훈령'을 채택하는 제도를 정하고 있다. 다만 '선거인의 훈령'의 제도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지방자치의 수준에서이다. 스탈린주의하의 사회주의 여러 나라는 시민이 국가기관의 활동에 직접 참가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나,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가 등장한 1950년대 후반 이후, 직접민주주의의 강화가 제창되고, 주로 지방자치의 수준에서 시민의 유지(有志)가 행정에 직접 참가하기 위한 제도가 차례로 만들어졌다.
 
=== 연방제 ===
소수의 사회주의국가의 중앙 국가기관은 연방제와 관련된 복잡한 기구를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하에서의 연방제는 민족문제와 관련하고 있다.
 
[[소련]]은 15개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국가이며, 각 소비에트 공화국은 국명과 같은 이름의 민족을 주로 해서 이루어졌다. 이 외에 소련에는 많은 소수민족이 있고, 그들은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 중에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총수 20), 자치주(총수 8), 다수의 민족관구(民族管區)를 이루고 있다.
 
[[유고슬라비아]]는 '남(南)슬라브인의 나라'라는 뜻이며, 슬라브 계의 민족을 구성단위로 하는 6개의 공화국으로 된 연방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69년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공화국으로 된 연방으로 개조(改組)되었다. 이 외에도 소수민족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에는 헝가리 인과 알바니아 인을 위해서 2개의 자치주가 만들어졌고, [[루마니아]]에는 헝가리인을 위해 1개의 자치주가 만들어졌다.
 
[[중국]]도 다수민족으로 구성되었으나, 한(漢)민족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연방제를 취하지 않고, 그 대신 소수민족을 위해 자치구·자치현·민족향 등 민족관구를 설치하고 있다.
 
연방제를 취하는 상기 3개국의 경우는 의회에 해당하는 기관도 또 정부도 연방과 공화국의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소련 최고 소비에트는 연방제를 반영해서, 연방회의(聯邦會議:인구에 비례해서 의원을 선출)와 민족회의(각 공화국에서 같은 수의 의원을 선출)의 양원(兩院)으로 되어 있고, 소련 정부에는 구성공화국의 총리가 참가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회는 복잡한 다원제를 취하였었는데(제1원은 연방원, 제2원에 해당하는 것은 경제원, 교육·문화원, 사회복지·보건원, 조직·정치원), 소련의 민족원에 해당하는 것도 만들어졌고 필요에 따라서 제2원으로서 활동한다(통상 민족회의의원은 연방회의의 일원으로서 활동한다).
 
또 체코슬로바키아의 연방의회도 인민회의와 민족회의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 유고슬라비아의 국가 조직 ==
사회주의 국가 중,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Socialist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만은 독특한 조직원칙을 채용하였다.
첫째로 유고슬라비아는 모든 기업을 그 기업 노동자의 자치에 맡기고 있다. 기업은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국가는 원칙적으로 기업활동에 개입하지 않는다.
둘째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코뮌]] 단위인 시민의 자치가 국가조직 전 체계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코뮌은 보통 몇 개의 읍·면으로 되어 있고, 큰 시(市)는 반대로 몇 개의 코뮌으로 구성된다. 각 코뮌은 국가로부터 침해당하지 않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코뮌의 상위에 있는 지구는 코뮌의 공통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또한 공화국과 연방의 권한은 헌법에 의해서 크게 제한되어 있다.
 
코뮌 의회는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코뮌 원(院)과, 생산단위에서 근로자만으로 선출되는 노동공동체원(勞動共同體院)의 양원(兩院)으로 되어 있다. 지구의회(地區議會)와 공화국의회도 같은 모양의 2원으로 되어 있고, 의원은 코뮌 의회에 의해서 선출된다. 코뮌 의회(일부는 공화국의회)에 의해서 선출되는 연방의회는 복잡한 다원제(多元制)를 택하고 있다([[연방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중앙집권은 관료주의라고 해서 부정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앙정부(연방집행회의)의 권한은 적으며 기구도 또한 간소화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유고슬라비아의 조직을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생산자의 자치와 코뮌의 자치를 절대화하고, 일체의 중앙집권을 부정하는 아나르코 [[생디칼리슴]]에서 유래하였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중앙집권적인 계획적 지도가 부정되어 국민경제의 불균형·지역격차·실업·기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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