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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수도는 [[사두 정치]] 체제때 로마시를 벗어나 지금의 [[밀라노]]인 [[메디올라눔]], 현 [[터키]]지역의 [[니코메디아]], 현 [[독일]]지역의 [[트리어]], 현 [[세르비아]]지역의 [[시르미움]] 네 군데로 나눠 제국을 통치하였고, 이후 [[동로마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서로마제국]]은 이후 [[라벤나]]로 천도하면서, 로마시는 정치적 중요성을 잃게 된다.
 
4, 5세기에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서고트족]]이나 [[반달족]]의 약탈을 받으며 [[서로마제국]]은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410년에 [[서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함락([[로마 약탈 (410년)|로마 약탈 (10년)]])되고, 455년에는 [[반달족]]에 의해 로마가 다시 함락([[로마 약탈 (455년)]])된다. 476년, 게르만 용병 장군 [[오도아케르]]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고, 결국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파일:Maggiore-obelisk.jpg|thumb|right|220px|[[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File:Vittorio Emanuele Ⅱ Monument, Roma.jpg|thumb|Vittorio Emanuele Ⅱ Monument, Roma]]
 
=== 르네상스의중심지 ===
6세기 이후 동고트 왕족을 정복한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 왕국]] 등 몇몇 [[게르만족]] 왕국의 지배를 거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샤를마뉴의 기부장에 따르면 [[800년]] 샤를마뉴가 [[로마 교황청]]에 로마의 지배권을 주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이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5세기]] 중반 이후, [[교황령]]의 수도로서 다시 번창해진 로마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치세에는 성벽 개수, 궁전 건설, [[교회]] 수복 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유명한 예술가나 건축가들이 대거 로마에서 활동하게 되었으며, [[15세기]] 말엽에는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교황을 위해 예술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루터교]] 용병들의 침략을 받아 황폐화되면서(이른바 [[로마 약탈]] 사건) 르네상스 시대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울러 가옥들이 어수선하고 밀집한 형태를 띤 [[중세]]의 도시가 근대화 되기 시작한 때는 [[16세기]] 말의 [[교황 식스토 5세]]의 시대로, 포폴로 광장에서 도시 중심부로 이어지는 세 개의 도로를 닦았으며, 광장과 샘도 만들어 찬란했던 로마의 모습을 되살려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공사가 끝난 때도 이 시대이다. [[대응 종교 개혁]] 시대 로마의 특징인 [[바로크]] 양식은 [[17세기]]의 건축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베르니니]]나 [[보로미니]]와 같은 조각가와 건축가들이 로마의 외관을 바꾸어갔다. [[18세기]]에는 교황의 통치 아래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스페인 계단]] 등에서 볼 수 있는 18세기 전반의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이윽고 [[신고전주의]]라는 독특한 건물로 대체되었다. [[1797년]] [[나폴레옹 1세]]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점령, 다수의 귀중한 미술품을 약탈하였다.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한 후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로마는 다시 교황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