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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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덕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에서 벌어진 [[부산 정치 파동]] 등 각종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여 [[김창룡]]과 함께 대표적인 '[[정치]][[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전쟁]] 중 있었던 [[이승만]]의 기습적인 [[반공포로석방]] 사건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정치적 받침대였던 [[이승만]]이 [[하야 (정치)|하야]]한 뒤, 연합참모본부 헌병 총사령부 총사령관에서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연합참모본부]] 고문으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1961년]] [[3월]]에는 7년 전인 [[1954년]]에 발생했던 [[불온문서 투입 사건]]과 [[김성주 살해 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되어 재판 끝에 한 달 후 [[1961년]] [[4월]] [[대한민국 육군|육군]] [[3성 장군|중장]] 강제 예편 처분 및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징역형]]을 다 채우지 않고 [[1963년]] [[3월]] [[사면|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1968년]] [[2월 4일]] 신당동 자택에서 심장협심증로심장[[협심증]]로 사망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죽기 전 [[1968년]] [[1월 25일]] 그의 신당동 자택(2층 양옥)이 화재가 났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만주국]] [[군대]]에서 [[장교]]로 장기간 [[장교|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