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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 ==
서북 [[인도]]의 [[브라만]] 출신으로 우쟈이니(우쟈인)에서 태어났다. 인도의 승려였지만 [[부남국]](扶南)에서 [[양나라|양]] [[양 무제|무제]](梁武帝)의 초청을 받아 불경 번역에 종사하게 된다. 대승불교 가운데서도 유가행유식학파(瑜伽行唯識派)를 전한 인물로 유명하다.
 
[[태청]](太淸) 2년([[548년]]) 파라마르타는 다수의 범어(梵語) 경전을 가지고 바다로 광저우(廣州)를 거쳐 양 왕조의 수도 [[난징 시|건강]](建康)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후경의 난으로 야기된 양 말기의 동란의 와중에 그를 초청했던 무제가 사망하면서 중요한 후원자를 잃고, 각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양 왕조가 무너지고 진(陳)이 세워지는 남조(南朝)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쑤저우]](蘇州)나 [[항저우]](杭州)로 피난한 파라마르타는 그곳에서 불경 번역을 시작하였다.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파라마르타는 평생에 걸쳐 범어로 된 여러 문헌을 한역(漢譯)하거나 논서를 지어서, 인도 [[유식파]](唯識派)의 [[아상가]](무착, 無着)과 [[바수반두]](세친, 世親)의 학설을 체계화하여 수입, 소개하였다.<ref name="글로벌-섭론종">[[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분파#섭론종|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섭론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그가 번역한 76부 315권에 달하는 불경 가운데서도 《섭대승론》(論), 《구사론》(倶論), 《금칠십론》(金七十論) 등은 특히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만년에는 자신이 머무르는 현재의 중국은 불법을 구해 유통시킬 때가 아니라고 느낀 파라마르타는 남지나해를 거쳐 인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실패하고 광저우에 남아, 자사(刺史)의 요청으로 다시 불경 번역에 종사하였고, 강경(講) ・ 강론(講論)에도 힘썼다. 파라마르타가 죽기 1년 전, 파라마르타에게 귀의한 제자들이 건강으로 돌아올는 것을 당시 건강의 승려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잇따랐고,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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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식론]]》
:[[바수반두]]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대표적 한역 문헌 두 개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현장]]의 《[[유식삼십론송]]》이다.)
* 《[[섭대승론]]》(攝大論) 3권
* 《[[섭대승론석]]》() 15권
* 《[[대승기신론]]》 1권
* 《구사석론》(倶釋論)
* 《중변분별론》(中分別論)
 
파라마르타가 죽은 뒤에는 그가 번역한 경론(論)이 북방에 수용되어, 제자들이 섭대승론 ・ 섭대승론석를 소의경전으로 하는 섭론종(論宗)이 성립되었고 파라마르타는 그 개조(開祖)로써 모셔지게 되었다. 또한 파라마르타가 번역한 번역한 《대승기신론》의 내용을 풀이하여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가 유명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疎)를 지었으며, 후대 중국이나 한국, 일본의 불교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주요 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