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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한민국 제3공화국|당시 정부]]는 현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 폭 50미터의 간선도로망 여러 개를 건설하였다. [[서울특별시]]는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 공고 제268호로 상기 도로 중 [[서초동]]~[[삼성동 (강남구)|삼성동]] 구간에 '''삼릉로'''(三陵路) 명칭을 부여하였다.<ref>{{서적 인용|url=http://theme.archives.go.kr/next/common/viewEbook.do?singleData=N&archiveEventId=0028052661#8|제목=대한민국 관보 제6315호, 서울특별시가로명제정(서울특별시공고 제268호)|성=|이름=|날짜=1972-11-29|출판사=대한민국정부 총무처|쪽=11|확인날짜=2016-11-26}}</ref> 이 이름은 도로 근처의 [[선정릉]]에 세 개의 봉분이 있는 것에 착안한 것이었다.<ref name=joins>[http://gangnam.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9807508 커버스토리: 테헤란로의 새 주인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강남통신, 2016-03-30 기사.</ref>
 
서울특별시는 1977년 2월 18일 [[여의교]] 북단으로부터 [[원효대교]] 남단까지 1000미터, 폭 35미터 구간(현재 [[여의대방로]] 구간의 일부분)을 '''테헤란로'''로 지정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서울특별시공고제36호(가로명 지정공고)|성=|이름=|날짜=1977-02-18|출판사=서울특별시|확인날짜=2016-11-27}}</ref> 같은 해 6월 이란 테헤란 시장 [[골람레자 닉페이]]가 서울특별시와의 자매결연을 위해 방한했는데 결연식에서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자국 수도명을 딴 도로명 부여를 제안했고 서울시장이 여기에 동의하였다. 동년 7월 1일 [[서울특별시]]는 기존에 지정했던 여의교 북단 구간의 테헤란로 명칭을 삭제하고 기존 삼릉로 구간(약 3200 미터)에 테헤란로 명칭을 붙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62800329206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6-28&officeId=00032&pageNo=6&printNo=9768&publishType=00020 국기원-삼성교 길이 3200 미터 테헤란로 명명식], 경향신문, 1977-06-28 기사.</ref><ref>{{웹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02/2016050202048.html|제목=한국에 '테헤란路' 이란에 '서울路' 생긴 까닭은?|성=금|이름=원섭|날짜=2016-05-02|웹사이트=조선일보|출판사=|확인날짜=2016-11-12}}</ref><ref>{{서적 인용|url=|제목=서울특별시공고제131호(가로명칭개정공고)|성=|이름=|날짜=1977-07-01|출판사=서울특별시|확인날짜=}}</ref> 1977년 [[6월 27일]] 양국 수도의 도로명 교환을 기념하는 표지석 제막식이 현장에서 거행되었다. 표지석은 도로명을 [[한국어]]와 [[페르시아어]]로 명기하였으며 도로명 교환 사실을 양국 언어로 새긴 석판을 표지석 기단부 앞쪽과 뒤쪽에 각각 하나씩 설치했다. 다음은 석판의 한국어판 문구이다.
 
{{인용문2|서울·테헤란 양시와 양시민의 영원한 우의를 다짐하면서<br>서울시에 테헤란로, 테헤란시에 서울로를 명명한다.|1977. 6. 27.<br>서울시장 구자춘<br>테헤란시장 고람레자 닉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