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광복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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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의 ==
좌우합작을 기반으로 한 신간회는 내부 일제 타협론자의 책동과 더불어 국내에서 합법성을 기반으로 한 운동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무장 투쟁 세력으로 승화되지 못했던 반면에 조국광복회는 인민전선론에 기반하여 광범위한 반일 세력을 통합한 최초의 무장투쟁단체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f>성주현 저, 『1930년대 천도교의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 관한 연구 - 갑산ㆍ삼수ㆍ풍산ㆍ장백현 지역의 조국광복회를 중심으로 -』(2000년, 한국민족운동사학회) pp. 219 ~ 225</ref>
 
또한 해당 단체에서 김일성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학계에서 논의된 바가 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경우는 김일성 가짜설이 한때 정설로 치부되던 [[1980년대]] 초반까지 [[김일성]]은 항일조직에 가담한 적이 없는 마적단 수장이라는 설을 지지했기 때문에 조국광복회 창설을 주도한 적이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아예 해당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을 변곡점으로 김일성 가짜설이 역사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라는 의견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의 통설이 되었고, 당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사령관이었던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과 밀접하게 관련된 조국광복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 김일성이 조국광복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입장을 취한 이론은 소수설이 된다.<ref>정병일 저, 『'반민생단투쟁'의 정치사적 의의 : 김일성 부상과 조국광복회 성립의 동인』(2008년,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pp. 2 ~ 4</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