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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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촌(통권 1호)''' - 1921년 5월 24일 창간되어 통권 1호로 끝났다. 발행인은 미국인 선교사 필링스(한국 이름은 변영서)였고, 편집인은 황석우(黃錫禹)였다. 4·6판, 20면이다. 동인으로 황석우·변영로·노자영·박영희·박종화·신태악·박인덕·오상순 등이 참여했다. 《폐허》가 1921년 1월에 중단되자 황석우를 중심으로 시 잡지를 따로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시 동인지가 되었다. 1922년 1월 《백조》를 창간하기까지 교량 역할을 하여 《백조》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표지에 '자유시의 선구'라는 부제를 달고, 그 아래 '선언'을 실어 "우리의 영(靈)의 영원한 평화요 안식을 얻을 촌(村), 장미의 훈향(薰香) 높은 신과 인간과의 경하로운 화혼(花婚)의 향연이 열리는 촌을 세우려 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낭만적인 이상향을 지향하려고 하였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시에 박영희의 《적(笛)의 비곡》《과거의 왕국》, 노자영의 《피어오는 장미》, 박종화의 《우윳빛 거리》《오뇌의 청춘》 등과 박인덕의 번역시 《콜럼버스》 등이 실려 있다.
《폐허》가 1921년 1월에 중단되자 황석우를 중심으로 시 잡지를 따로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시 동인지가 되었다. 1922년 1월 《백조》를 창간하기까지 교량 역할을 하여 《백조》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표지에 '자유시의 선구'라는 부제를 달고, 그 아래 '선언'을 실어 "우리의 영(靈)의 영원한 평화요 안식을 얻을 촌(村), 장미의 훈향(薰香) 높은 신과 인간과의 경하로운 화혼(花婚)의 향연이 열리는 촌을 세우려 한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낭만적인 이상향을 지향하려고 하였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시에 박영희의 《적(笛)의 비곡》《과거의 왕국》, 노자영의 《피어오는 장미》, 박종화의 《우윳빛 거리》《오뇌의 청춘》 등과 박인덕의 번역시 《콜럼버스》 등이 실려 있다.
 
'''장미촌 2004.9 - 부활(통권 2호)''' - 최초의 시 전문지라는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2004년 9월 이용환, 윤솔이, [[조상용]], 조의현, 김영숙, 김선부, 신인숙, 김혜숙, 김인영, 구경애, 염종식, 정일영, 강성우, 이병헌, 빅정훈, 최종필 등 16인이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를 발행했다. 발행은은발행인은 [[조상용]]이었고, 편집인은 이용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