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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까지 테헤란로 주변은 인근 지역에 비해 개발이 지지부진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 기준으로 토지가격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었고 기존의 [[강남대로]]가 남북방향으로 발달하여 동서방향인 테헤란로에 상권이 들어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ref name=office/><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1500209206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15&officeId=00020&pageNo=6&printNo=19344&publishType=00020 테헤란로 주변 볼썽사납다], 동아일보, 1984-08-15 작성기사.</ref>
 
이후 1984년 하반기 테헤란로 일대가 중심상업 및 업무지역으로 지정되어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돌입하였으며<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0600329210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06&officeId=00032&pageNo=10&printNo=11956&publishType=00020 테헤란로, 영동의 핵으로 본격개발], 경향신문, 1984-08-06 작성기사.</ref> 1987년 도로 동쪽 끝 부분에 [[한국종합무역센터]] 등 대형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오피스 빌딩가(街)로 진화하기 시작했다.<ref name=office>[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82800099210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7-08-28&officeId=00009&pageNo=10&printNo=6611&publishType=00020 테헤란로 오피스빌딩가 부상], 매일경제, 1987-08-28 작성기사.</ref> 당시 경기호황과 맞물려 1990년대 중반까지 테헤란로에 오피스 건물 준공 열기가 지속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61900099113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6-19&officeId=00009&pageNo=13&printNo=8790&publishType=00010 서울 테헤란로 오피스빌딩 준공 러시], 매일경제, 1994-06-19 작성기사.</ref> 이 시기 대한민국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대거 테헤란로로 본점을 이전하거나 신축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7090009910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07-09&officeId=00009&pageNo=1&printNo=9149&publishType=00010 강남 테헤란로 비즈니스 신 메카 부상, 대기업 사옥 속속 이전], 매일경제, 1995-07-09 작성기사.</ref> 또한 [[마포구]]에 있던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테헤란로로 이전하면서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이전이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22300099115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6-12-23&officeId=00009&pageNo=15&printNo=9634&publishType=00010 테헤란로 소프트웨어 밸리 급부상], 매일경제, 1996-12-23 작성기사.</ref> 1997년 초부터 정보통신 관련기관의 입주가 시작되어 당시 업계에서는 테헤란로를 '희망의 거리'로 부르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12800209129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1-28&officeId=00020&pageNo=29&printNo=23437&publishType=00010 테헤란로 신대방동 정보통신 메카 부상], 동아일보, 1997-01-28 작성기사.</ref> 이 지역의 당시 급속한 발전 원인은 격자형으로 기획 정비된 도로망에 지하철 2호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한데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몰리면서 집적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때문이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0100209142014&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12-01&officeId=00020&pageNo=42&printNo=23041&publishType=00010 테헤란로, 한국의 월가로], 동아일보, 1995-12-01 작성기사.</ref>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외환위기]]를 맞았고 [[김대중 정부]]가 대대적인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조치는 '테헤란로의 대학살'로 불리기도 했는데<ref name=chosun/> 금융 종사자들이 떠난 뒤 청년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테헤란로에 벤처기업 입주가 활발해졌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0180032911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10-18&officeId=00032&pageNo=11&printNo=16881&publishType=00010 밤잊은 모험의 땅 테헤란 벨리...제2 빌게이츠들의 요람 테헤란로 24시], 경향신문, 1999-10-18 작성기사.</ref> 또한 구제금융 이후 외국계 기업의 입주도 활발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서울시 중심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크게 하락했으며 기반시설이 우수한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500099127010&editNo=16&printCount=1&publishDate=1999-09-15&officeId=00009&pageNo=27&printNo=10473&publishType=00010 외국기업 테헤란로 입주 붐], 매일경제, 1999-09-15 작성기사.</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