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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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역사}}
'''이탈리아의 역사'''는 [[선사시대]] 및 기원전 9세기 무렵 고대 이탈리아 부족들까지 소급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이탈리아 반도와 부속 도서에는 여러 국가가 세워지고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었으며 1946년 [[공화국]]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역사'''는 [[선사시대]] 및 기원전 9세기 무렵 고대 이탈리아 부족들까지 소급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이탈리아 반도와 부속 도서에는 여러 국가가 세워지고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으로 통일되었으며 1946년 [[공화국]]이 되었다.
 
== 이름의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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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카르보나리]]등 비밀결사 단체의 활동과 [[마치니]]가 주도한 민족운동이 일어난바 있었는데 실패로 끝나고, 이탈리아에서는 샤르데냐 왕국의 [[카보우르]]가 통일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카보우르]]는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강화한 후 외교적성과를 돋보여 [[185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약속받아 오스트리아에 대하여 통일전쟁을 일으켰다.
 
롬바르디아를 비롯한 중북부지방중북부 지방 이탈리아를 통합한 샤르데냐 왕국은 공화주의자인 [[가리발디]]의 활약으로 이탈리아 남부지역인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통합하여 샤르데냐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통일국가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을 만들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제국]]간의 전쟁을 틈타 [[베네치아]]에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를 몰아내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이용하여 [[교황령]]을 점령함으로써 통일이 일단락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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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부터 이탈리아는 중립국이었다. [[1914년]] [[8월 3일]]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독일 제국]]황제 [[빌헬름 2세]]에게 이탈리아가 참전을 해야만 하는 것에 관한 3국 동맹의 조건에 참전 명분이 적합하지 않음을 알린다. 이날 이후로 이탈리아 정부는 중립을 선포한다.
 
그 이후 오랫동안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과 [[동맹국]] 그리고 [[연합국]] 사이의 교섭이 진행된다. 마침내 [[1915년]] [[4월 26일]], 런던에서 이탈리아는 한달 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하였고, 또한 연합국의 모든 적국들에게 반대한다는 협정을 체결한다. '피에 대한 대가'로서 이탈리아는 영토를 약속 받게 된다. [[영국]]은 이탈리아에게 5억 파운드의 돈을 빌려준다. 이때 [[독일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이탈리아가 중립국을 유지한다면 이탈리아인들이 사는 영토를 이탈리아인들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독일 대사 뷜로프는 이 약속에 대해 이탈리아 중립 지지자들 대표인 지오리티에게 알리게 된다.
 
이탈리아 의회 대의원들의 508명 중 320명이 지오리티를 지지했다. 사란드라 수상은 사표를 제출한다. 그러나 이때 전쟁 지지자들이 사회주의자 베니토 무솔리니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를 앞세워 의회와 중립 지지자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한다. 이탈리아 왕은 사란드라의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오리티는 로마로 떠나야만 했다. [[5월 23일]]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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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
[[파일:Italian empire 1940.PNG|thumb|250px|1940년에1940년 당시의 이탈리아 왕국]]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이탈리아는 [[1940년]],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전쟁에 참전, 남부 프랑스 지방을 공격했으나 패전하였고, 동시에 그리스와 북아프리카, 이집트에 선제공격함으로써 공세를 펼쳤으나 패전을 거듭하였고, 이후 [[1943년]],[[연합군]]은 [[시칠리아 섬]] 상륙작전 성공하여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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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진격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피에트로 바돌리오]]장군을 중심으로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추축군 [[나치스]]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고 섬에 갇혀있던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하여 복귀시킨 후, 북부 이탈리아에 [[살로 공화국]]을 수립했다. 하지만, 살로공화국은 사실상 나치스 독일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남부 이탈리아는 연합군이 점령, 북부 이탈리아는 나치스의 꼭두각시정부인 살로공화국이 있었고, 서로 대립하였다.
 
[[1945년]] 나치 독일이 항복하면서 [[살로 공화국]]도 해체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스위스]]로 도망가던 중 [[파르티잔]] 게릴라에게 잡혀 총살당한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을 하게 된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을 하게 된다.
 
한편,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내각수반으로 임명하고,이를 방관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군주제 폐지 여론이 들끓던 무렵, [[1946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아들인 [[움베르토 2세]]에 왕위를 넘겨주며 퇴위했다.
군주제 폐지 여론이 들끓던 무렵,[[1946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아들인 [[움베르토 2세]]에 왕위를 넘겨주며 퇴위했다. [[움베르토 2세]]는 [[입헌군주제]]유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6월 2일]] 국민투표에서 46%의 적은 입헌군주제 지지율을 받게되어, 군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움베르토 2세]]를 포함한 [[사보이 왕가]]는 국외로 추방되어,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오늘날 [[사보이 왕가]]는 2002년 이후가 돼서야 이탈리아 입국이 허용되었다.
 
군주제 폐지 여론이 들끓던 무렵,[[1946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아들인 [[움베르토 2세]]에 왕위를 넘겨주며 퇴위했다. [[움베르토 2세]]는 [[입헌군주제]]유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6월 2일]] 국민투표에서 46%의 적은 입헌군주제 지지율을 받게되어, 군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움베르토 2세]]를 포함한 [[사보이 왕가]]는 국외로 추방되어,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오늘날 [[사보이 왕가]]는 2002년 이후가 돼서야 이탈리아 입국이 허용되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공화국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이탈리아는 공화국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현대 ==
=== 이탈리아 공화국 ===
[[1946년]] [[6월 2일]] 국민 투표를 통해 군주제가 폐지됨으로써 이탈리아는 [[1948년]] [[1월 1일]] 새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공화정이 되어, 오늘날의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그 이후에 수많은 정당이 생겨나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가중되었고, 오늘날도 내각이 수차례 바뀌는 등 번복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과거 [[1861년]] 통일된 이래 겪어온 남북지역간 경제적 및 문화적 갈등이 오늘날까지도 심화되고 있다.
그 이후에 수많은 정당이 생겨나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가중되었고, 오늘날도 내각이 수차례 바뀌는 등 번복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과거 [[1861년]] 통일된 이래 겪어온 남북지역간 경제적 및 문화적 갈등이 오늘날까지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 이탈리아는 [[나토]]와 [[EU]]의 원년 회원으로서 서유럽의 정치, 경제적 통일 노력에 참여해오고 있다. [[1999년]]에는 유로를 통화로 도입하였고, 오늘날 [[G8]]에 포함될 만큼 국제적인 영향력이 있는 국가들 중 하나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