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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덴표 문화==
율령제에 의해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가 확립되어가자, 국가의 부가 중앙에 집중되어 수도 나라의 황족과 귀족은 이러한 부를 배경으로 호사를 누리며 귀족적. 불교적인[[불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의 귀족은 [[견당사]] 등이 가져온 당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덴표 문화는 [[측천무후]]와 [[당 현종]] 연간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당나라 문화의 유입에는 [[다자이후]]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쿠가(国衙, [[구니]]의 관할 관청)·고쿠분지 등에 임명된 [[고쿠시]](国司), 관인과 긍려 등에 의해서 지방에서도 새로운 문화가 퍼져나갔다. 이렇게, 중국풍·불교풍 문화의 영향이 일본 사회에 스며들었다. [[비단길]]에 의해 [[서아시아]]에서 당나라로 유입된 문화도, 견당사를 통해 일본까지 전해지기도 하였다.
 
중앙 정부는 학생과 승려를 당나라로 유학시켜 여러가지 문물을 받아 들였으며, 한반도와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이러한 교역의 결과물은 [[정창원]] 보물로 다수 남아 있다. 대표적인 유학생들로는 [[716년]]([[레이키]] 2년)에 당나라로 건너간 [[아베 나카마로]](阿倍仲麻呂, 당나라에서 객사), 기비 마키비, 승려 겐보 등이 있다.
 
역사서로는 [[고지키]], [[니혼쇼키]]가, 문학 작품으로는 [[와카]]집인 [[만요슈]]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시집 가이후소(懐風藻)가 편찬되었으며, 각 지방의 지리·전설·유래 등을 기록한 지지(地志)인 [[풍토기(風土記)]]도 활발하게 편찬되었다.
 
불교 역시 [[진호국가]](鎮護国家)의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쇼무 천황]]은 [[도다이지]](東大寺)를 조영하고, 전국 각지에 고쿠분지를 세워 국가의 안태를 기원하여 불교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외 관계==